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준(準)조세’나 ‘그림자 조세’로 악용되는 부담금이 도처에 남아 있다”며 현행 91개에 달하는 부담금 제도 전면 개편을 지시했다. 전기 요금에 3.7%를 추가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 공항 출국 때 부과하는 1만1000원 ‘출국 납부금’, 영화 관객에게 표 값의 3%를 부과하는 ‘영화 상영관 입장권 부과금’ 등 일상생활 곳곳에서 국민들이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내는 부담금의 타당성을 모두 검토하겠다는 취지다.
부담금은 1961년 제도 도입 이후 준조세 형태로 조세법률주의 같은 통제 없이 징수돼 왔다. 2002년 약 7조4000억원이던 부담금은 올해 24조6157억원으로 3배 넘게, 2014년(약 17조2000억원) 대비 10년 새 약 43%(7조4000억원) 늘어날 예정이다.
이를 전면 개편하려면 부담금 관련 법령 개정이 필수라서 향후 야당과의 협의가 관건이며, 이 준조세 성격의 기금들을 사용하고 있는 각종 단체와의 협상 등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지난 60여 년간 정당성에 대한 문제가 끊이지 않은 부담금 제도가 전면 대수술에 들어갈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계적 징수 ‘쌈짓돈’
특정 공익사업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1961년 도입된 부담금은 경제 개발 시기인 1980년대 대폭 증가했다. 에너지 낙후 지역을 위한 전력기금, 상수도 지역 수질 개선과 주민 지원을 위한 ‘물 이용 부담금’ 등 급속한 경제 성장과 맞물려 발생할 수 있는 격차 해소를 위한 공익사업이 주된 목적이었다. 1960년대 7개 수준이었던 부담금 종류는 1990년대 95개까지 늘었고, 2000년대 102개로 최다를 기록했다가 이후 신설·폐지가 이어져 2024년 기준 91개에 달한다.
부담금이 대폭 늘어난 것은 ‘걷기 쉽고, 쓰기 쉬운 돈’이기 때문이다. 조세와 달리 전기 요금, 영화 입장권 등에 사용자가 잘 알지 못하게 부과하거나, 담배 등 사업을 하려면 무조건 내야 하기 때문에 납부 저항이 적어 ‘징수율’이 100%에 가깝다. 한국전력이 전기 요금을 걷을 때 3.7%씩 추가로 떼어 징수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역대 평균 징수율이 99.2%다. 올해는 3조2028억원 징수 예정이다. 담배 사업자로부터 담배 20개비당 841원을 징수하는 ‘국민 건강 증진 부담금’도 올해 2조9264억원이 예상된다.
◇시대 변화 반영 않고, 취지 어긋난 집행
수십 년 전 도입 때와 비교해 사회는 크게 바뀌었는데 기계적으로 부담금을 징수하면서 애초 취지와 어긋나게 집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01년 전력 산업 민영화에 대비해 낙후 지역 지원과 산업 기반을 확충하는 데 쓰기로 했던 전력기금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 한전공대 건립 등에 투입해 논란을 빚었다.
환경부의 폐기물 부담금은 유해 물질을 함유하거나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 제조업자나 수입업자에 폐기물 처리 비용을 부과·징수한다. 그런데 껌은 유해 물질이 없고 소각도 가능하지만 여전히 판매가의 1.8%를 일괄 부과하고 있다. 요율도 2000년 0.27%에서 1.8%까지 늘었다. 경제 단체들은 “현행 부담금 제도가 일관적이지 않고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며 꾸준히 개선을 요구해 왔다.
정부는 회원제 골프장 시설 입장료에 대한 부가금 폐지를 시작으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부담금을 순차 개편하기 위한 정부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수영장 등 다른 체육 시설과 달리 회원제 골프장 이용자에게만 1000~3000원을 징수하던 부가금은 2019년 위헌 판결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 유정주 기업제도팀장은 “각 부처가 조세보다 걷기 쉽다는 이유로 법정 부담금을 선호했던 측면이 있었다”며 “정부의 법정 부담금 개선 대책이 신속하게 실현된다면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크게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