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붐을 타고 화장품과 식품 등 한국 소비재 수출이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경공업 제품 수출 비중이 30% 육박하는 등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화장품 판매코너./연합뉴스

국내 화장품 제조 기업 코스맥스는 이달 초 사내 신설한 ‘아프리카 TF(태스크포스)’ 팀을 통해 케냐의 화장품 브랜드 ‘언커버’를 고객사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흑인 피부에 맞는 화장품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도 늘렸다. 이를 통해 마스크팩 등으로 국한됐던 제품을 선크림, 색조 화장품으로 확대하고 있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인도, 중동, 남미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고 했다.

사진=shopglowtheory 인스타그램

‘K뷰티’의 수출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일본 위주였다면 ‘탈중국’ 추세 속에 최근 ‘K컨텐츠’ 열풍에 힘입어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시장까지 개척하고 있다. 2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화장품 수출액은 2018년 대비 지난해 34.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프리카 대륙 수출은 7배 가까이(682%) 급증했다.

이는 IT 제품 및 중공업과 중국 시장에 주로 의존해왔던 우리 산업 구조의 대변화와 맞물린 현상이다. 지난해 IT 제품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를 밑돌았다. 한때 32%에 육박했는데 1993년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반면 가방·비누·식료품 등 소비재 수출이 크게 늘며 경공업의 수출 비율은 30%에 육박하며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래픽=이철원

소비재가 다시 주력 수출품으로 떠오르면서 ‘경공업 2.0′ 시대가 열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화 시기 값싼 노동력을 앞세워 섬유나 각종 생활용품을 제조해 판매했다면, 이제는 K소프트파워를 활용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소비재의 세계적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상품이 아닌 북미, 유럽 등 선진국의 주류 사회에서 인기를 끄는 고품질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화장품, 비누, 김, 라면 같은 소비재 수출이 크게 늘며 우리나라 수출에서 경공업 수출 비율이 30%에 육박해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IT 제품 비율은 20% 밑으로 떨어지면서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이 바뀐 것이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중동을 넘어 중남미, 아프리카로 신(新) 시장 개척에 나서며 ‘경공업 2.0 시대’로의 산업 구조 변화 흐름이 가속화하고 있다.

그래픽=정인성

소비재 수출은 최근 크게 늘었다. 2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식료품, 의류, 신발 등 경공업 제품 수출 비율은 전년보다 2.2%p 높은 29.8%로, 1993년(30%) 이후 3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IT 제품 비율이 늘면서 2000년대 후반 6%대까지 떨어졌던 경공업 비율은 2020년 20.2%를 기록한 뒤 급증했다. 화장품 수출은 최근 5년 새 34.9% 증가했고, 두발용 제품(샴푸 등)은 40.8%, 가방도 38% 증가했다. 드라마, 영화 같은 K콘텐츠에 힘입어 한국 음식들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라면 등 면류는 5년 새 112.6%, 김은 52.9% 수출이 늘었다. 김치, 김밥, 만두 등 대표적 한국 음식들도 해외 온라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인기를 끄는 중이다.

우리나라 경공업도 5년 전만 해도 중국 의존도가 높았지만, 중국 내에서 내수 기업이 성장한 데다가 미중 무역 갈등 등의 영향으로 대중 수출이 줄면서 베트남 등 아세안 지역으로 수출길을 넓혔다. 이후 최근 3~4년 사이 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 열풍에 힘입어 중동에 이어 북미, 중남미, 아프리카까지 새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우리와 인종, 문화, 식성 등이 다 다른 지역까지 진출하다 보니 각 지역에 맞는 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예를 들어 화장품은 아프리카 수출용으로는 한국 판매 제품보다 하얗게 피부가 떠보이는 ‘백탁 현상’이 적은 선크림을 개발하거나 발색력이 더 좋은 립스틱이나 아이섀도를 출시하는 식이다. 식품 업체는 ’더 매운 고추장’ ‘덜 매운 고추장’ 등 맵기를 다르게 한 소스를 해외에 판매하기도 하고, 중동 지역을 겨녕한 ‘할랄 라면’ 인도를 겨냥한 ‘치킨 라면’ 등도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