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다음 달부터 전봇대에 무단으로 설치된 통신선을 일제히 정비하겠다고 29일 밝혔습니다. 시설 기준에 맞지 않거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통신선을 이전하지 않으면 아예 차단하겠다는 겁니다. 한전은 그동안 통신 3사 등에 무단 통신선 시정을 요구해왔는데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강경 대응에 나선 겁니다. 2019년 84%였던 시정 조치율(요구 대비 조치 비율)은 지난해 63%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유독 시정 조치율이 낮은 한 통신사엔 고소장까지 보냈습니다.

통신사 작업자가 전봇대에 올라, 5G 기지국 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한전과 통신사의 전봇대 갈등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닙니다. 전기선과 통신선의 ‘전봇대 동거’는 인터넷과 IPTV 보급이 급증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습니다. 1996년 인터넷과 유선전화, 1999년부터 유선방송이 한전 전봇대를 임차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일선 현장에서 급하게 통신선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낮은 위치에 거미줄처럼 얽히면서 각종 사고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통신선 무단 설치로 인한 안전 우려가 다뤄질 정도입니다. 한전에 따르면 한전 전봇대에 허락을 받지 않고 설치된 통신선은 4만㎞에 이릅니다. 서울과 부산을 50번 왕복하는 길이입니다. 한전의 1017만개 전봇대 가운데 통신선이 설치된 전봇대는 411만개, 이 가운데 9%가 넘는 38만개에 무단으로 설치한 통신선이 걸려 있습니다. 한전 관계자는 “무단 통신선에 임대료의 3배 위약금을 물리지만 임대료가 월 800원(통신선 하나당)이어서 큰 부담이 아닌 데다 한전이 1년에 조사할 수 있는 전봇대가 전체 10% 정도인 10만 개뿐이다 보니 통신사들이 일단 설치하고 위약금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통신 업체들은 고객에게 일분일초라도 빨리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려다 보니 한전의 승인을 기다리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한편에선 경영난에 시달리는 한전이 전봇대 임대료를 올리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전기와 통신 모두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입니다. 원만하게 합의해 소비자 불편이 없기만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