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이 시스템 오류로 마비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3.11.17/뉴스1

정부가 지난해 잇달았던 행정 전산망 먹통 사태를 계기로 공공 분야 소프트웨어(SW)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11년 만에 허용하기로 했다. 공공 전산망 등 700억원 이상 대형 SW 사업에 대기업도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설계·기획 분야에서는 발주 금액과 관계없이 대기업에 전면 개방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클라우드·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을 공공 부문에 빠르게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31일 이런 내용을 담은 ‘디지털 행정 서비스 국민 신뢰 제고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중소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자산 규모 5조원이 넘는 대기업(2016년부터는 자산 10조원)은 공공 SW 사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국가 안보나 신(新)기술 분야 사업 등에서만 심의를 거쳐 제한적으로 대기업 참여를 허용했다.

그러나 지난해 공공 전산망 먹통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대기업 참여를 확대해 품질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작년에만 3월 법원 전산망 마비, 6월 4세대 초중고 교육 행정 정보 시스템(NEIS·나이스) 오류 사고가 잇달아 터졌다. 11월엔 전국적인 행정망 마비 사태로 각종 민원 서류 발급이 중단됐다가 사흘 만에 겨우 복구됐다. 이후 “대기업 참여 제한 조치가 애초 취지와 달리 각종 전산망 사고 발생을 유발하고 대응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여러곳이 컨소시엄 형태로 전산망 사업 입찰에 참여할 때 중소기업 지분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주던 ‘상생 협력 평가 제도’도 손보기로 했다. 현재는 중소기업 참여 지분율이 50% 이상 돼야 만점을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론 40% 이상이면 된다. 대기업이 사업에 참여하더라도 지분이 적다 보니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어 대기업이 절반 이상 지분을 갖고 주(主) 사업자로서 책임을 다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또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관행을 막기 위해 하도급 비중이 낮을수록 높은 점수를 부여하기로 했다.

다만 일각에선 반복되는 공공 전산망 사고가 단순히 대·중소기업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이 구축한 전산망도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이미 예외 분야 심의를 통해 상당수 대형 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