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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SK그룹의 경영 최고협의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취임한 최창원(60)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의 고강도 쇄신이 본격화하고 있다. 주 5일제 도입과 함께 사라졌던 ‘토요 사장단 회의’를 20년 만에 부활시켜, 그간 월 1회, 평일에 열던 ‘전략글로벌위원회 회의’를 사실상 격주 토요일마다 열고 있다. 전략글로벌위원회 회의에는 사장단 5~6명이 참석한다.

최근 몇 년간 광범위하게 이뤄진 SK그룹의 인수·합병(M&A) 사업성을 재검토하고, 반도체 위기 등 불황을 돌파해야 하는 ‘구원투수’ 역할을 맡은 최 의장의 리더십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최 의장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오전 7시 전에 출근한다. 외제차 대신 국산 미니밴을 타고,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 대신 사원들과 똑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스타일 파격’이 우선 화제다. 음주는 거의 하지 않고 날마다 산책, 명상, 운동, 일기 쓰기 등 4가지를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최근 임직원에게 보낸 설 명절 선물에도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인간의 위대한 발견은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포함했다고 한다.

◇최태원 회장 신뢰 바탕으로, 그룹 쇄신 맡아

최 의장은 올 초 임직원 미팅에서 “기존 질서의 붕괴는 갑자기 발생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를 수펙스 의장에 선임한 사촌형 최태원(64) 회장이 평소 여러 차례 강조해온 ‘기업의 서든데스(돌연사)’를 풀이해서 강조한 것으로 여겨졌다.

최 의장은 고(故) 최종건 SK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최 회장의 사촌 동생이다. 최종건 창업주 별세 후 동생 최종현 회장이 그룹을 이어받고, 최종현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회장이 그룹 경영을 해왔다. 최 의장은 그룹 중간 지주사인 SK디스커버리를 맡아 SK케미칼·SK가스·SK바이오사이언스 등 계열사를 사실상 분할 경영해왔다.

10여 년간 분쟁 없이 ‘따로 또 같이 경영’을 해 온 최 의장에 대해 최태원 회장은 가족으로서 신뢰뿐 아니라 경영 능력도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최 의장은 ‘사촌 경영’에 대해서는 “나는 전문 경영인”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픽=양인성

◇”계열사 중복 사업 재검토” 쇄신에 고삐

최 의장은 최근 계열사 간 중복 사업을 모두 검토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그간 SK그룹 내부에서 수펙스와 SK㈜가 경쟁적으로 투자하면서 중복되는 신사업이 많았고, 여기서 일부 손실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일부 사업 정리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분은 ‘내실 있는 사업 확장 달인’ 평가를 받는 최 의장이 수펙스 의장으로 발탁된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SK케미칼을 맡아 당시 주력 사업이었던 섬유 부문을 과감히 정리하고, 신약·바이오 신사업을 확대했다. 국내 최초 세포배양 3가 독감백신, 세계 두 번째 대상포진백신 등을 출시했고, 2018년 SK바이오사이언스로 분할해 상장했다. SK가스에선 액화석유가스(LPG) 외 액화천연가스(LNG)로 사업 분야를 넓혔다.

2021년 프로야구 SK와이번스(현 SSG랜더스) 매각 사례도 최 의장의 경영 스타일이 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로 꼽힌다. 중·고교 시절 야구선수를 꿈꿨던 최 의장은 구단주를 맡아 애정을 쏟았고, 현장을 존중하는 스타일로 ‘최고의 구단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적자가 큰 사업이라는 판단에 따라 최태원 회장에 매각을 먼저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최창원 SK’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고강도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계열사들은 이미 예산, 인센티브 체계 등 모든 부문에서 긴축 경영 경쟁에 들어갔다. 다만, 일각의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의장은 최근 임원들에게만 오전 7시 출근을 권했고, 일반 직원에게는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공식 업무시간 이전 보고를 받거나 회의를 소집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