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지역 배터리·태양광 사업에서 호재로 여겨졌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전기차 시장 둔화, IRA에 부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등에 따라 AMPC가 실제 약속한 규모로 지급될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도입한 IRA에 따라 미 정부는 미국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하면 전기차 배터리 셀(전지)은 kWh(킬로와트시)당 35달러, 모듈(팩)은 kWh당 10달러, 태양광 셀은 W(와트)당 4센트, 모듈(패널)은 W당 7센트씩 현금을 주거나 세금을 줄여주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도 IRA 혜택 요건을 채우기 위해 미국, 캐나다에 각각 수조원대 투자를 발표하고 진행하고 있다. 태양광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화솔루션도 북미 최대 규모 태양광 모듈 생산 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부터 본격화한 IRA 보조금 혜택은 실제 한국 기업들의 영업이익 선방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기차 시장 수요 둔화로 영업이익이 크게 꺾일 수 있었는데, 보조금이 이를 상쇄한 효과가 컸다. 국내 1위 배터리 제조사 LG엔솔은 작년 영업이익 2조1632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이 중 AMPC 보조금 혜택이 6770억원에 달했다.
이달 6일 실적발표회를 연 SK온은 적자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영업손실 5818억원으로 전년(1조726억원)보다 48.5% 개선됐다. AMPC 6170억원이 반영된 수치로, 이를 제외한다면 영업손실(1조1988억원)은 전년보다 늘어날 수 있었다. 한화솔루션도 작년 미국 현지 생산을 늘려가면서 작년 3분기까지 약 858억원 보조금을 받았고, 증권가에선 올해는 AMPC 수취 금액 최대 5500억원을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런데 오늘 11월 앞둔 미국 대선에서 재집권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반대 입장을 보이며 IRA 폐기, 내연기관 자동차 활성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수조원대 보조금 혜택으로 글로벌 기업 생산기지를 북미 지역에 유치한 것 관련해선 “역사상 가장 큰 세금 인상의 원인”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해도 현재 시행 중인 법안을 무조건 폐지할 수는 없다. 미국 상·하원 승인을 거쳐야 하는 등 즉각 폐지는 사실상 가능성이 작다. 다만, 기존 법을 유지하면서 혜택 규모를 줄이거나, 수취 시점을 늦추는 등 한국 기업 입장에서 불리하게 조정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AMPC의 경우 분기마다 생산량을 결산해 미 당국에 보조금 수취를 신청하고, 해당 분기 회계에 영업이익으로 반영한다. 신청 및 서류 처리 절차를 모두 마치고 실제 받기까지는 약 1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셸 스틸(Michelle Steel) 미국 하원 의원은 지난달 한국무역협회 사절단과 만난 자리에서”공화당은 IRA 폐지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며 “기업의 탄소 중립 전환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지원 규모의 점진적 축소 등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지원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배터리 기업 입장에서 완성차 업체들이 AMPC 공유를 요구하는 것도 변수다. 일본 파나소닉은 작년 단독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인데도 2분기 수혜액 450억엔의 절반인 242억엔(약 2100억원)을 영업이익에서 차감하고 고객사 지급분으로 반영했다. LG엔솔과 합작법인 설립한 GM도 합작 지분율 이상 AMPC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미국 태양광 기업 ‘퍼스트솔라’는 최근 약 7억달러(약 9400억원)에 달하는 미사용 AMPC 혜택을 할인해 사모펀드에 매각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총액의 약 4%를 할인해 판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부의 ‘투자세액공제 ITC(Investment Tax Credit)’ 와 ‘생산세액공제 PTC(Production Tax Credit)’를 제3자에게 팔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 있다. AMPC의 경우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생산세액공제를 거래한다. 할인 가격으로 조기 현금화하면 향후 리스크를 줄이고,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흐름 속에 LG엔솔, 한화솔루션 등 북미 지역에서 배터리, 태양광 사업을 확대하며 IRA 보조금을 기대했던 한국 기업들도 미사용공제 선매각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각 산업 모두 올해 시장 둔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장래 회계상 이익인 APMC 금액을 단기간에 매각하고 현금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