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물류 전문 기업인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6일 소형차 1만800대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자동차 운반선(PCTC) 4척을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자동차 운반선 최대 규모는 7000~7500대 수준인데, 1만대 이상 초대형 자동차 운반선은 처음이다. 이를 위해 공공 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는데 자동차 운반선 부족으로 자동차 수출 물류난이 심화하자 민관(民官)이 손은 맞잡은 것이다. 선박 도입과 유동성 지원 등 국내 해운산업 성장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양진흥공사가 건조 비용을 대고, 2027년 선박이 건조되면 현대글로비스가 빌려 운영하는 구조다.
자동차 운반선 품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런 탓에 운임은 폭등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동차 운반선 시장은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 같은 다른 해상 운송과 다른 시장이었다. 완성차 브랜드는 북미·유럽·일본·한국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된 데다 제품 특성상 내수 소비 비중이 컸다. 생산은 북미·유럽이 주도했지만, 운반선 선사 1~4위는 한국 기업 1사(현대글로비스 3위), 일본 선사 3사가 차지했다. 한국·일본에서 생산한 차량을 주로 북미·유럽으로 수출하고, 이 지역 생산 차량을 한국·일본으로 실어 오는 구조였다.
최근 몇 년 새 중국 ‘전기차 굴기’로 판이 바뀌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60만대 수준이던 중국발(發) 자동차 해상 물동량은 작년 300만대 수준으로 약 5배 늘어났다. BYD 등 전기차 기업이 급성장하면서 수출 물량을 쏟아내 자동차 운반선 부족 상황이 이어졌다. 2020년 6500CEU(1CEU는 소형차 1대 공간) 운반선 기준 1만6271달러(약 2120만원) 수준이었던 자동차 운반선 운임은 지난 1월 11만5000달러(약 1억5300만원)까지 폭등했다.
◇잠잠했던 자동차 운반선 시장 급변
최근 자동차 운반선 운임 급등은 예상 못 한 수요 폭증, 공급 부족이 맞물린 탓이다. 운반선 공급 측면에서 국제해사기구(IMO) 에너지 효율과 탄소 배출 규제 기준에 미달하는 운반선 49척이 2019년부터 차례로 폐선됐다. 2016~2020년 주요 완성차 기업이 소비 지역에 공장을 지으면서 운반선 발주도 감소했다. 반면 중국 전기차 급증으로 수요는 폭증했다. BYD는 작년 4분기 세계 시장에서 전기차 52만6000대를 판매해 처음으로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판매 1위에 올랐다. 최근 전기차 시장이 둔화했다지만 가격을 내려 재고 밀어내기 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자동차 운반도 늘고 있다. 해외 공장을 늘리며 국내 생산량이 줄었던 현대차·기아도 지난해엔 7년 만에 200만대 수출을 돌파했다. 2020년 글로벌 자동차 물동량의 42%(706만대)를 차지했던 극동(한·중·일) 출발 물량은 작년 51%(1070만대)로 증가했다.
◇中, 운반선 선대 꾸리고 韓도 확보 나서
해운업 전반에선 팬데믹 특수에 따른 호황이 끝났지만, 자동차 운반선은 일감이 쌓이고 있다. 다만, 선사들은 용선(傭船) 요금 부담이 커졌다. 해운업은 선주(船主)로부터 용선료를 내고 선박을 빌려와 화주(貨主)로부터 운임을 받는다. 주요 선사들이 작년 한 해에만 운반선 188척을 발주했지만 납기는 지연되고 있어 선박 확보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용선료 인상, 운임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내수 비중이 컸던 BYD 등 중국 기업들은 운반선 확보가 어려워지자 직접 선대(船隊)를 꾸려 운영하기로 하고 장기 용선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월 BYD의 첫 운반선이 중국 광둥성 선전항에서 전기차 5449대를 싣고 유럽을 향했다.
국내 선사들도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2002년 자동차 운송사업 부문을 매각했던 HMM은 작년 자동차 운반선 7척을 신규 발주하며 사업을 재개했다. 2026년 선박 인수 후 약 15년 용선(선박 대여) 계약을 맺었는데 약 2조원 규모에 달한다. 현대글로비스도 보유 선박과 용선을 포함해 현재 83척 규모 선대를 2027년 110척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