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윤석열 대통령 임기 동안 원전 연구·개발(R&D) 혁신에 총 4조원을 투자한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원전 해체와 방사성 폐기물 관리 등 탈(脫)원전 정책 위주로 원전 R&D를 진행한 것과 달리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전(SMR), 4세대 원전 등 미래 유망 기술로 원전 R&D 투자의 무게중심을 옮기기로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다시 뛰는 원전산업, 활력 넘치는 창원·경남’을 주제로 열린 14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올해를 원전 재도약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펼치겠다”고 했다.

마산 어시장서 "손님 많아질 것" -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남 창원시 마산 어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악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전통 시장에 활기가 돌게 해달라는 상인의 말에 "마산과 창원의 경제가 살아나면 시장을 찾는 손님도 많아질 것"이라며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대통령실

탈원전으로 고사(枯死) 상태까지 내몰렸던 원전 생태계 회복을 위해 올해 원전 일감을 3조3000억원 규모로 늘리고, 지난해 5000억원이었던 원전 기업 대상 저금리 대출 등 특별금융 지원도 1조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또 올해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을 제정하고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 윤 대통령은 “원전의 미래를 내다봤던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나라 원전 산업) 연구개발의 토대를 닦았다. 실로 대단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원전 기자재·부품업체들이 집중된 창원·경남 지역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처럼 글로벌 ‘SMR 파운드리 클러스터’로 키우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그래픽=김의균

22일 정부가 밝힌 창원·경남 ‘SMR 클러스터’ 육성안은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지역 경제가 극심하게 위축된 곳을 글로벌 SMR 산업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취지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용인·화성·이천 등 경기 남부 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갖추는 것과 같이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를 비롯해 원전 기자재·부품 업체 수백 곳이 몰려 있는 이 지역을 글로벌 SMR 제조·생산 거점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규모 공사가 이뤄지는 기존 대형 원전과 달리 발전 용량이 작고, 원자로·가압기·증기 발생기 등이 일체형으로 된 SMR은 공장에서 제작해 현지에 납품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수출 주력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이날 “SMR을 주력산업으로 키우겠다”며 반도체·자동차 등을 잇는 수출 효자 품목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미 두산에너빌리티가 미국 뉴스케일파워, 엑스에너지 등 해외 SMR 설계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맺고 설비 제작에 들어가면서 창원·경남 원전 업체들은 글로벌 SMR 공급망에 진출한 상황이다.

◇원전 투자 세액 공제 대상 대폭 확대

지난 정부에서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 공사가 올해 본격화하고, 계속 운전 설비 투자도 늘면서 원전 일감은 지난해보다 3000억원 증가한 3조3000억원까지 확대된다. 특히 신한울 3·4호기에 납품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을 위해선 계약 즉시 계약금의 30%까지 선금을 받을 수 있도록 특례를 시행한다. 1000억원 규모 2~3%대 저금리 대출을 포함한 6000억원 규모 융자와 1250억원 규모 수출보증 등 원전 기업을 위한 특별금융도 지난해 두 배인 1조원으로 확대된다.

민간 투자를 이끌기 위해 세액 공제율을 50% 이상 늘리는 제도 개편도 이뤄진다. 대형 원전은 물론 SMR 투자 세액 공제 대상을 확대하고, 원전 중소·중견기업의 설비 투자세액 공제율도 현재의 12%, 6%에서 각각 18%, 10%로 늘린다. 이 같은 세제 혜택으로 올해에만 설비 및 R&D 투자 창출 효과가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정부는 추정했다.

◇원전 중장기 로드맵 구축, 특별법도 제정

정부는 2050년까지 원전 건설, 운영에 대한 비전과 목표, 지원 방안 등을 담은 중장기 원전 로드맵을 올해 안에 수립하기로 했다. 또한 로드맵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금융·세제 및 인력 양성 지원 방안 등을 담아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원전산업지원특별법도 법제화에 나선다.

이날 윤 대통령은 “원전 덕분에 값싼 전기 생산이 가능하고, 산단 주변에 다양한 업종이 생긴다”며 “원전이 곧 민생”이라고 했다. 또 1956년 한미 원자력협정 체결, 1959년 원자력원 설립, 서울대·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설치 등을 언급하며 “흔히 원자력 발전의 시작을 1978년 고리 1호기로 기억하는 분이 많지만, 실제 우리나라 원전의 기초를 다진 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이승만 대통령을 이어받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9년 최초의 원자력 장기 계획을 수립해 원전 산업을 일으켰다”면서 두 전직 대통령이 한국 원전 산업의 토대를 닦았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탈원전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를 두고선 “이념에 매몰된 비과학적 국정 운영이 세계 일류 원전 기술을 사장시키고 기업과 민생을 위기와 도탄에 빠뜨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