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JP모건, 시티,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미국 주요 은행 4곳이 ESG(환경·사회·지배 구조)를 위한 금융업계 자발 협약인 ‘적도 원칙(Equator Principles)’에서 탈퇴했습니다. 적도 원칙은 1000만달러(약 133억원) 규모가 넘는 개발 프로젝트가 환경 파괴를 일으키거나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면 자금을 지원하지 않기로 한 금융업계 약속인데, 여기서 빠진 것입니다. JP모건자산운용, 핌코, 인베스코 같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지난달부터 지구온난화 대응을 압박하는 자산운용업계 모임인 ‘기후 행동(CA) 100+’에서 잇달아 탈퇴하고 있습니다.
2020년대 들어 ‘돈줄’을 무기로 ESG 경영을 유행시킨 대형 은행과 자산운용사들이 ESG와 거리 두기에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미국 대선 등 ‘수퍼 선거의 해’를 맞아 ESG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이른바 ‘그린워싱(Greenwashing·친환경적이지 않으면서 친환경처럼 보이게 하는 것)’에 대한 비판까지 늘어나자 ESG 강화에 부담을 느끼는 기업과 투자자가 많아졌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이런 가운데 2026년 이후 시행을 목표로 다음 달 ESG 공시 기준 초안 발표를 추진하는 국내 현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재계에서는 “우리만 과속하다가 글로벌 모르모트(실험용 쥐)가 될 것” “초안 발표 일정을 늦추고, 기업들과 충분히 소통해 시행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최근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이 “ESG 공시 시행을 2028년 이후로 늦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6일(현지 시각) 상장 기업들에 직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승인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의견 수렴 과정에서 나온 기업과 주(州) 정부의 반발을 감안해서인지 보고 기준이 초안보다 눈에 띄게 후퇴했습니다.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비판을 받아온 가치 사슬 전반에 걸친 스코프 3 배출량은 보고 항목에서 아예 빠졌고, 스코프 1(직접 배출)과 스코프 2(전력 등 간접 배출) 보고 기준도 완화됐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은 가야 할 길입니다. 다만 EU(유럽연합) 등 세계 각국이 속도를 조절하는 지금, 글로벌 추세에 보조를 맞추는 결정도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