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빚을 진 한국전력과 자회사가 지난해 낸 이자는 4조4517억원에 달한다. 매일 122억원씩이다. 한전은 회사채와 차입금이 13조원 더 늘면서 이자는 전년보다 2조3668억원(58%) 급증했다. 더 큰 문제는 심각한 재무 위기에도 구조조정은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문을 닫게 되면서 인력 구조조정이 시급한 일부 발전 자회사는 오히려 직원 수가 늘었다. 한전의 부동산 매각은 전년 대비 6분의 1로 급감하는 등 자산 매각을 통한 구조조정도 지지부진하다.
19일 본지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서 한전과 한전의 발전 자회사 6곳, 가스공사, 석유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10개 에너지 공기업 재무·인력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0사의 인력은 총 5만6426명으로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8년(5만3610명)보다 2816명(5.3%)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부채는 167조원에서 276조원으로 109조원(65.3%) 증가했다.
◇석탄발전 구조조정 필요한데, 인력은 더 늘어
가스공사와 한전, 지역난방공사 등은 2018년 이후 본격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을 밀어붙이면서 재무구조가 급격히 부실해졌지만, 신재생에너지 등 신사업 추진을 앞세워 인력을 대폭 늘렸다. 이때 불린 몸집 탓에 인력 구조조정에 애를 먹고 있다. 한전이 5년 동안 828명(3.7%) 증가한 것을 비롯해 해외자원 개발 투자 실패 충격이 컸던 석유공사를 제외한 9사에서 모두 인원이 늘었다.
석탄발전이 주력인 동서·남부·중부발전 세 곳은 지난해에도 전년 대비 인원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36년까지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 59기 중 28기가 문을 닫으면서 인력 감축이 시급한데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발전 자회사들이 석탄에서 LNG와 양수발전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가운데, 같은 출력 기준으로 LNG 발전은 인력이 석탄의 절반이면 충분하고, 양수발전은 3분의 1 정도면 된다. 인력을 기존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꼽히는 부동산 등 자산 매각도 지지부진하다. 공공기관 자산 처분 시스템인 온비드에 따르면, 한전이 매각·임대를 추진 중인 부동산은 현재 29건에 달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입찰가가 230억원인 동대문 동부지사 사옥 부지는 세 번, 185억원 규모 의정부 구사옥은 아홉 차례 유찰됐다. 지난해 한전의 부동산 매각액은 637억원으로 2022년(3631억원)의 6분의 1에 그쳤다. 부동산 불경기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회사채와 차입금이 13조원 늘어나며 자회사로부터 중간배당까지 받은 한전의 위기 상황을 생각하면 크게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회계처리 규정 바꿔 적자가 흑자로 둔갑
지역난방공사는 지난해 결산부터 회계처리 규정을 변경해 적자를 흑자로 바꿨다. 지역난방공사 지난해 매출은 3조9537억원, 영업이익은 3147억원이다. 3분기까지 영업적자가 1786억원에 달했지만, 원가를 밑도는 요금 때문에 손실로 계산됐어야 할 4179억원을 나중에 받을 미수금으로 바꾸면서 연간으로 3147억원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미수금이 13조원에 달하지만, 겉으로는 흑자를 내는 가스공사 방식을 따른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가스공사의 회계처리도 비판이 큰 상황에서 본질을 바꾸지는 않고, 부담을 뒤로만 미룬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정치권 출신들이 에너지 공기업 수장에 선임되면서 구조 개혁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가스공사가 좌지우지하는 가스시장을 두고 독립 규제 기구 설립이 추진됐지만, 관련 법은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한 가스업계 관계자는 “정치인 출신인 최연혜 사장이 오히려 노조의 주장에 동조해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저지 로비를 했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다”고 전했다. 4선 국회의원 출신인 김동철 한전 사장이 신년사에서 “한전이 KT, 포스코와 같은 국민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선 재무구조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하는 시기에 불필요한 민영화 논란을 일으켰다는 비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