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별로 다 달라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우니 많이 찾아보세요.”

“개별 기업의 상황은 대표가 제일 잘 압니다. 법령에 있는 것들을 잘 생각하면서 준비하십시오.”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청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설명회'에 참석한 소상공인들과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강연을 듣는 모습. 이날 예상보다 많은 110여명이 몰려 구청 측은 자리를 급히 추가하기도 했다. /강다은 기자

지난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청 별관 대강당에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주최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설명회’. 지난 1월 말부터 중대재해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적용되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자리를 빼곡히 메웠지만, 강연 내용은 “알아서 잘 준비하라”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날 참석한 한 업체 사장은 “설명회를 들으면 뭔가 수가 나오겠지 하고 무리해서 왔는데 아까운 시간만 버렸다”며 답답해했다.

◇법 시행 두 달 됐지만 ‘부실’ 설명회 이어져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유예 법안의 국회 통과가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고용노동부·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최근 설명회를 잇따라 열며 부실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24일에도 대한상의와 고용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오는 27일부터 전국 38개 지역상공회의소를 돌며 순회 설명회를 연다고 밝혔지만, ‘속 빈 강정’이 될 것이란 우려가 벌써 나온다.

이날 행사는 당초 준비한 84석보다 많은 110여 명이 몰리면서 자리를 급하게 늘릴 정도로 성황이었지만, 정작 설명회가 부실하게 진행되면서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참석자들에게서 나왔다.

이날 설명회에서 고용부 관계자는 “기업마다 케이스가 다 달라서 개별 건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고,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도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읊으며 “법령을 잘 보라”고 ‘당부’했을 뿐 명쾌한 설명이나 답변은 없었다. 철공소가 밀집한 문래동을 비롯해 영등포구 곳곳에서 온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자리를 채웠지만, 이들 업종에 특화된 맞춤형 사례나 구체적인 예방법은 알기 어려웠다. 그 흔한 설명회 자료도 따로 제공하지 않다 보니 “우리보고 다 외우라는 거냐” “너무 무성의하다”는 목소리도 컸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한 철공소 사장은 “애초에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법인데 설명회를 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뭐라도 기대하고 온 내가 잘못”이라고 했다.

◇관련 조직만 커지고, 컨설팅 업체만 배불려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법이 충분한 검토 없이 시행에 들어가면서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은 물론 고용부·중기부 등 부처들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는 지난 1월 말부터 자가 진단 테스트 등을 ‘산업 안전 대진단’ 안내 센터를 통해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말뿐이라는 비판이 많다. 지난 21일 본지가 직접 안내 센터에 상담을 문의한 결과 “신청자가 많아 최소 두 달은 지나야 상담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고용부의 업종별 가이드라인도 도움은 되지 못하고, 중기부에서 내놓겠다던 소상공인용 중대재해법 가이드라인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대구에서 30인 규모 염색업체를 운영하는 한모 대표는 “정부가 만들었다는 수십 쪽짜리 가이드라인을 봤는데, 뭘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런 와중에 중대재해법을 명목으로 정부 내 관련 조직은 커지고, 사설 컨설팅 업체는 호황을 맞고 있다. 고용부 산업안전감독관 수는 중대재해법 시행 2년째인 2022년 810명까지 늘어나며 5년 사이 2배가 됐다. 고용부 산업안전보상정책국은 2021년 산업안전보건본부로 격상됐고, 인원도 47명에서 82명으로 크게 늘었다. 관련 예산도 대폭 확대됐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불안을 틈타 사설 컨설팅 업체만 배를 불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에서 열리는 중대재해법 유예 촉구 결의 대회 행사장에선 중대재해법 대비를 명목으로 컨설팅 업체들의 호객 행위가 끊이지 않고, 중소기업·소상공인이 모인 대화방엔 컨설팅을 미끼로 대출을 광고하는 글도 잇따른다. 준비 없는 법 시행으로 ‘사교육’만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교육과 지원 사업의 내실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교수는 “정부는 ‘지침도 만들었고 가이드라인도 내놨다’면서 할 일을 다했다고 하지만, 최대한 예시를 들고, 기업 입장에서 꼼꼼하게 대비하도록 도와야 한다”며 “전문가조차도 지금과 같은 가이드라인이나 설명으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