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에 있는 ㈜신안천사김에서 권동혁 대표가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자사 주요 제품에 대해 설명해주는 모습. 고교 졸업 후 건어물 가게에서 김 사업을 시작한 권 대표는 이제 세계 15국에 김을 수출하는 국내 김 수출 1위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신안=김영근 기자

권동혁(62) ㈜신안천사김 대표는 40년 넘는 세월을 ‘김’에 쏟아부었다. 주변에선 ‘김에 미친 사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마친 1980년 서울 광장시장 건어물 가게에서 김을 나르던 청년이 지금은 미국 대형 마트인 코스트코 전 세계 876개 매장과 중국 월마트 체인, 호주 바이오리빙 등 15국에 ‘K김’을 수출하는 연 매출 1000억원에 육박하는 회사 대표가 됐다.

◇인생을 건 코스트코 김 납품

“일본(코스트코)에서 우리 김이 매출 상위 10위에 들며 인기를 끄니 놀란 미국 본사가 ‘무슨 일이냐’면서 조사를 했답니다. 세계에 김을 알릴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지난달 21일 전남 신안군 신안천사김 사무실에서 만난 권동혁 대표는 코스트코 본사와 PB(자체 브랜드) 납품 논의를 시작하던 2011년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서구에선 김을 ‘블랙 페이퍼(검은 종이)’라 부르며 먹거리라는 인식이 낮을 때였다.

권 대표는 코스트코 납품 제안이 들어오자 살던 집을 담보로 잡고 전남 신안에 전용 공장까지 지었다. 그는 “도중에 너무 힘이 부쳐 ‘하던 거나 계속할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고 했다. 까다로운 미국 소비자 입맛을 잡기 위한 연구·개발도 필요했다. 권 대표는 “밥이 주식이 아닌 미국에선 스낵으로 김을 먹다 보니 손에 기름이 묻으면 안 되고, 덜 짜고 더 바삭하길 원했다”며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고 말했다.

고생 끝에 입성한 미국 시장에서 신안천사김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반년 만에 코스트코 전 세계 점포로 납품처가 확대됐고, 글로벌 결산 행사에서는 5년 넘게 우수 사례로 소개됐다. 2012년 컨테이너 150개였던 수출 물량이 지금은 1200~1400개로 늘었다. 컨테이너 1400개에 들어가는 김을 이으면 1만160km 정도 되는데 서울~뉴욕 거리(약 1만1047km)와 비슷하다.

◇중부시장 3평짜리 가게에서 출발

권 대표는 1986년 서울 중구 오장동에 있는 건어물 시장인 중부시장에서 3평(약 10㎡) 남짓한 구멍가게를 열면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직원이라고는 권 대표와 아내, 처남까지 합쳐 4명이 전부였지만, 사업 수완과 끈질긴 노력으로 매출은 가파르게 늘었다. 김 시장이 조미김으로 바뀌던 1995년 판매법인을 세웠고, 2004년엔 직접 조미김 제조를 시작했다. 권 대표는 “소규모 업체에 임가공을 맡겨 납품했는데 원하는 만큼 맛있지도 않고, 클레임도 많았다”며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 이천에 5개 라인 규모로 공장을 짓고,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사리’라 불리는 12~2월에 나오는 질 좋은 마른 김을 쓰고, 참기름도 아끼지 않다 보니 맛 소문이 났다. 거래처는 계속 늘었고, 일본 시장까지 진출했다.

‘1억불 수출의 탑’을 받은 2022년, 권 대표에게 다시 한번 시련이 찾아왔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중금속 검사를 이유로 통관을 막으면서 수출이 타격을 받았다. 권 대표는 해외에서 검사 설비까지 들여와 양식장부터 공장 라인까지 기준을 맞추며 문제를 해결했다.

지난해 신안천사김 매출은 전년보다 5% 늘어난 94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7억9000만달러(약 1조700억원)어치 김을 수출했는데 신안천사김이 1위다. 권 대표는 “앞으로도 내 자식이나 손자가 먹는다고 생각하며 정직하게 좋은 상품을 만들어 우리 김을 세계에 더 많이 알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