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국내 주요 대기업의 직원 수는 감소한 반면 임원 수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급격한 기술 변화로 기존에 대규모 인력이 필요했던 부문이 자동화, 외주화되는 등 신규 인력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대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임원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현상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최근 대기업들이 연차에 상관 없이 파격적으로 우수 직원을 임원으로 승진시키고, 앞다퉈 경력직 채용에 나서는 등 복합적인 환경 변화가 ‘직원 감소, 임원 증가’라는 새로운 현상을 불러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10일 매출액 기준 국내 상위 500대 기업 중 사업 보고서를 제출하고 임직원 수를 공시한 기업 가운데 작년과 2022년이 비교 가능한 337사의 미등기 임원 수와 직원 수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조사 결과 작년 대기업 임원 1인당 직원 수가 전년과 비교해 적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직원 수 1.4% 줄었는데 임원 9% 늘어
조사 대상 기업의 작년 기준 임원을 제외한 직원 수는 131만855명으로 2022년(131만2552명)과 비교해 1697명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임원 수는 1만1927명에서 1만2182명으로 255명 늘었다. 임원 1인당 직원 수는 2022년 110명에서 작년 107.6명으로 줄어들었다.
변화 폭이 가장 큰 업종은 은행이었다. 작년 은행 업종의 직원 수는 8만3990명으로 2022년(8만5219명)에 비해 1.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 수는 줄었는데 임원 수는 오히려 늘었다. 2022년 210명이었던 임원은 작년 229명으로 19명 많아졌다. 은행권의 비대면 영업이 가속화되면서 은행 점포 수가 축소되고, AI, 디지털 혁신 등 신사업 수요는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면 영업에서 비대면 플랫폼 경제로 편입되는 등 사업 구조가 재편되고 있는 유통 업종은 작년 직원 수가 8.3%나 줄었는데, 임원 수는 그에 비해 적은 3.6%만 줄면서 임원 1인당 직원 수는 210.8명에서 200.6명으로 적어졌다. 편의점 사업 등을 하는 유통 기업 GS리테일은 조사 기간 직원은 5.8% 줄었는데, 임원은 0.1% 늘었고, 롯데하이마트는 직원이 14.6% 줄었는데 임원은 기존 10명에서 11명으로 1명 늘었다.
◇지주사는 임원 1명당 직원 35명
20개 업종 가운데 임직원 수가 가장 많은 IT전기전자 업종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 IT전기전자 업종의 직원 수는 30만2922명으로 2022년(30만166명)에 비해 1% 늘었는데, 임원은 같은 기간 2171명에서 2356명으로 8.5% 늘었다.
임원 1명당 직원 수가 가장 적은 업종은 ‘지주’였다. 지주사는 자회사 관리라는 업무의 특성상 임원 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지주사들도 같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조사 대상 지주사의 직원은 2022년 5118명에서 작년 5122명으로 0.1%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임원 수는 138명에서 146명으로 5.8% 증가했다. 임원 1명당 직원 수가 약 35명에 불과한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매 기업들조차 IT를 기반으로 플랫폼, 유통 기업으로 바뀌고 있을 정도로 산업 구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임원의 역할을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글로벌 현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