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이스라엘 본토에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1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영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대들이 이란 국기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일요일인 1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중동 사태에 따른 긴급 경제·안보 회의’를 주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비슷한 시각, 석유공사·무역협회 등 유관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상황점검 회의’를 열었다. 이날 새벽 이란이 이스라엘에 드론과 미사일을 동원한 보복 공격을 감행하며, 확전 우려가 커지자 원유 등 에너지 수급과 국내 수출기업들의 해상 물류·운송 현황을 점검한 것이다.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과 세계 경제 둔화,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 적자와 수출 감소를 가져온 것과 같은 충격이 우리 경제를 다시 강타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불안감을 키워온 중동에서 이란과 이스라엘이 직접 대결에 나서면서 세계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각국이 조만간 금리 인하에 나서며 길고 긴 ‘고물가, 고금리’ 국면에서 벗어날 것이란 기대가 최근 들어 커졌지만, 세계 7위 산유국 이란이 전쟁 당사자로 등장하자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한 일이 됐고, 금리 인하는 멀어졌다. 후티반군이 장악한 홍해를 피해 남아프리카 희망봉으로 돌아가던 국제 물류는 호르무즈 해협까지 봉쇄 위기를 맞으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특히 중동지역에서 원유의 70%, 액화천연가스(LNG)의 30%를 수입하는 우리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뚫을 것이란 전망에 무역수지 적자 전환 우려는 커졌고, 급등한 에너지 가격이 전기·가스 요금 등을 자극하며 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올 들어 살아나기 시작한 반도체 등 IT(정보기술) 수출이 꺾일 것이란 전망도 많아진다.

◇원유 비롯한 에너지가격 고공행진 우려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데 이어 이스라엘이 재보복에 나설 경우 보복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973년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기습침공하며 일어난 제4차 중동전쟁에 이어 51년 만에 제5차 중동전쟁이 일어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국제 유가가 이달 들어서만 3%가량 오른 상황에서 이란의 보복 공격이 현실화하며 배럴당 100달러 돌파는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국제 유가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배럴당 90.45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가 100달러를 마지막으로 기록한 때는 2022년 8월이었다.

특히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 공격에 앞서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스라엘과 관련된 화물선을 나포하면서 긴장은 고조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라크·이란·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의 수출통로다.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생산량의 3분의 1, 석유의 6분의 1이 이곳을 거친다. 이번 공격에 앞서 CNBC는 무력 충돌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어지면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대로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이란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등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원유와 석유제품 비축량은 공공과 민간을 합쳐 8개월치 정도다.

◇확전 여부가 관건…세계 경제에 충격 우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 이란 수출은 1억8331만달러(약 2540억원), 대 이스라엘 수출은 19억1367만달러였다. 지난해 전체 수출액 6322억달러와 비교하면 각각 0.03%, 0.3%에 그치는 수준이다. 2018년 11월 미국의 경제제재가 강화되며 이란으로 수출은 급감했고, 이란산 원유 수입은 끊겼다.

양국과 직접적인 무역 규모는 미미하지만, 확전으로 세계 경제가 움츠러들면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우리로서는 직격탄 우려가 커진다. 경기 둔화로 각국에서 IT제품 수요가 급감하면 올 들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수출 1위 품목 반도체의 수출 전선도 타격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각국에서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며 금리 인하가 늦어지면 돌고 돌아 세계 경기 위축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살아나던 우리 반도체 수출도 꺾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수입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석유·가스·석탄 등 에너지 수입액이 급증하며 무역수지가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에너지 수입 단가가 높아지면서 최근 다소 진정 추세를 보이던 전기·가스 요금을 자극하고, 경제 전반에 부담을 지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