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해운 업계 지각변동이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해운업은 호황 때 곳간을 채우고 불황을 버티는 사이클이 분명한 산업인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 전례 없는 특수가 끝나고 운임이 5분의 1 수준까지 급락하면서 불황 사이클이 본격화했다. 호황의 정점이었던 2022년 골드만삭스, 메타를 능가하는 영업이익(302억달러·약 41조8000억원)을 기록했던 세계 2위 해운사 머스크마저 작년 말 직원 10%에 해당하는 1만명을 정리해고했다. 이와 함께 세계 2위 머스크, 5위 하파크-로이트는 각각 기존 해운동맹을 깨고, 내년 신규 동맹으로 출발한다. 과거 불황기처럼 글로벌 해운사들이 기존 시장 질서를 뒤흔들어 경쟁자를 제거, 흡수하는 상황이 다시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대 규모지만 글로벌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량) 기준 점유율 2.7%(79만TEU·8위)인 HMM(옛 현대상선)의 앞날도 밝지 않다. HMM은 올 연말 예상 기준 92만TEU(84척)인 선복량을 2030년 150만TEU(130척)로 확대한다고 15일 밝혔다. 그러나 지난 2월 매각이 무산된 데 이어 HMM이 포함된 글로벌 해운동맹의 해체 가능성까지 커지면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역대급 호황 지나고 깊은 불황 본격화
해운업은 저점, 회복, 고점, 붕괴의 경기 순환 주기를 수백년 반복해왔다. 저점에서 선사들은 임시 결항, 폐선 등 전략으로 운임을 올리고 회복기를 거쳐 고점 단계에 이르면 자금이 풍부해져 운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선박 투자에 나선다. 이어 신규 선박이 투입되면 공급과잉으로 운임은 급락하고 불황(붕괴)을 맞게 된다.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팬데믹 호황기에 전례 없는 신규 선박 주문이 이어졌고, 2023~2025년 매년 5위 규모(약 200만TEU)인 하파크-로이트의 컨테이너선이 신규 투입된다”며 “시장 경쟁이 심화하고 운임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팬데믹 호황 때 5000대까지 올랐던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작년 말 1000 수준까지 급락했고, 최근 홍해 사태 영향으로 반짝 올랐지만 1700대에 머무르고 있다.
신규 선박과 운임 변수에 이어 그간 해운 업계에서 공고했던 해운동맹도 재편되며 변수가 커졌다. 해운동맹은 선사에 허용된 일종의 카르텔이다. 동맹 기업끼리 노선, 선박, 항만 터미널을 공유해 원가를 절감하고 화주 상대 영업도 확대할 수 있다.
작년 1월 세계 1·2위 해운사 MSC와 머스크의 동맹 ‘2M(점유율 약 34.5%)’의 해체 발표 때만 해도 관망 분위기가 우세했다. 그러나 올해 1월 HMM이 속한 동맹 디얼라이언스(점유율 18.5%)의 주축이었던 독일 하파크-로이트(7%)가 탈퇴를 선언하고 내년 2월 머스크와 신규 동맹 ‘제미나이’ 출범을 발표하면서 판이 흔들렸다. 통상 해운동맹 재편은 불황에 빈번했고, 화주와 장기 계약을 유지하기 위한 출혈경쟁도 이어진다.
◇해운동맹 재편에 HMM 위기 더 커져
2M이 해체됐지만 단일 기업으로 점유율 19.9%인 스위스 MSC는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독자 운영도 불가능하지 않고, 앞으로 동맹 재편에서도 ‘갑(甲)’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계, 중국계 해운사로 구성된 동맹 오션 얼라이언스(28.9%)는 지난달 애초 2027년으로 예정됐던 계약 만료 기간을 2032년까지 연장하면서 결속 강화를 택했다. HMM은 대안 모색이 시급하다. 같은 동맹 소속 세계 6위 일본 ONE, 10위 대만 양밍도 마찬가지다. 해운 업계에선 아시아~유럽, 아시아~북미 항로를 정기 운항하려면 400만TEU 이상 선복량이 필요한 것으로 본다. 현재 3사를 합해도 334만TEU에 그친다. 과거 HMM이 디얼라이언스에 합류하기 전 2M과 느슨한 ‘2M+H’ 협력 관계를 구축했던 사례도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해양수산부는 15일 ‘해운 산업 경영 안정 및 활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HMM 매각을 다시 추진하는 동시에 국내 컨테이너사 선복량을 2030년까지 200만TEU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해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앞서 밝힌 2조9900억원에 추가로 3조4800억원을 추가 투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