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그룹의 조선(造船)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HD현대미포 노조가 현재 60세인 정년을 65세로 늘리고, 임금피크제를 없애는 2024년 임금·단체협약 공동요구안을 지난 17일 회사 측에 전달했다. 작년 임단협에서 정년 1년 연장 요구가 불발됐는데, 올해는 ‘5년 연장’ 카드를 내놨다. 노조 측은 “호황을 맞은 조선소 경쟁력 강화와 고령화한 인력 구조 개선을 위해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74년생) 은퇴와 ‘고숙련 블루칼라’ 구인난이 맞물려 조선·철강·자동차 등 제조업 현장에서 현재 정년 60세를 최고 65세까지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조는 현재 정년(60세)과 연금 수령(1969년생 이후는 65세부터) 사이 ‘소득 공백’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업도 인력 고령화, 숙련공 부족 현실을 고려할 때 고령 인력 고용이 필요하지만, 정년 연장, 특히 임금피크제가 없는 연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청년층 신규 채용 감소, 과다한 인건비 부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대안으로 정년이 도래한 숙련 인력을 계약·촉탁직 형태로 추가 고용하는 ‘시니어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정년은 60세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일하기 원하는 근로자를 65세까지 재고용하는 일본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다만, 일본의 65세 고용 제도가 1990년 논의를 시작해 32년 만인 2021년 도입됐듯이 산업 현장에 안착하긴 위해선 긴 시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임단협 뜨거운 감자 ‘정년 연장’
고령 근로자 고용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제조업 현장에서 젊은 인력 유출은 늘고, 노령화는 갈수록 빨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철강 산업에서 제품 경쟁력과 효율을 좌우하는 ‘숙련공’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고령자의 근로 의욕도 더 커졌다. 작년 6월 통계청의 ‘고령자의 특성과 의식 변화’에 따르면, 정년퇴직 이후에도 근로를 희망하는 65~74세 고령자는 2012년 47.7%에서 59.6%로 늘었다. 노조의 임단협 요구안에 정년 연장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작년 정년 연장 요구안(60→64세)이 불발됐던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다시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올 초 출범한 현대차·기아 노조 모두 정년 연장은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작년 창립 55년 만에 첫 파업 직전까지 갔던 포스코도 주요 쟁점이 정년 연장이었다. LG유플러스 2노조도 올해 임단협에 앞서 65세 정년 연장을 요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회원사 124곳을 대상으로 올해 예상되는 임단협 주요 쟁점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정년 연장(28.6%)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만 연공서열·호봉제를 택한 국내에선 장기근속 직원일수록 더 많은 급여를 받기 때문에 정년이 연장될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고, 청년 채용이 줄어드는 게 불가피하다. 숙련공 확보와 인력 세대교체 사이 딜레마다.
◇사회적 논의 필요해
정년 연장을 두고 갈등을 빚는 노사는 당장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시니어 재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 포스코, HD현대중공업 등 주요 기업은 숙련 인력을 정년 도래 이후에도 계약직·촉탁직 형태로 6개월~1년 재고용하고 있는데, 정년 연장이 불가능하다면 이런 형태 고용의 규모·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은 작년 임단협에서 정년 1년 연장이 불발됐지만, 당시 재고용 ‘1+1′에 합의했다. 퇴직 후 최장 1년까지 가능했던 숙련공 재고용을 1년 더 늘렸다. 지난달 현대차그룹도 2019년 도입한 ‘시니어 촉탁제’를 확대해 8개 계열사가 2026년까지 1만3000명 규모 고령 인력을 재고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핵심 라인인 엔진과 변속기 파트에서 재고용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중소·중견기업 재고용 확대를 위해 계속고용제도(재고용, 정년 연장·폐지)를 통해 숙련 인력을 고용한 사업주에 근로자 1명당 연간 1080만원 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부터 지원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다.
그러나 시니어 재고용을 도입한 제조업에서도 노조는 궁극적으로 ‘정년 연장’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고용 기간 퇴직 전 급여의 90% 수준도 받을 수 있지만, 정규직과 복지와 처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지원책이 자리 잡기 전까지는 정년 연장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