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23일. 청와대에 안충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부·민간 위원 16명이 모였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회의 주제는 FTA(자유무역협정). 일본·멕시코 등 경쟁국이 잇달아 FTA를 맺어 나가자 우리 수출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때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주요 무역국 가운데 FTA를 하나도 맺지 못한 ‘FTA 지각생’, ‘통상 외톨이’ 신세였다. 1983년 세계 무역 규모 12위를 기록한 뒤 20년째 ‘톱 10′ 문턱을 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날 정부는 ‘FTA 추진 로드맵’을 만들기로 하고, 동시다발 FTA 추진을 공식화했다. 시작은 늦었지만 빠르게 경쟁국을 따라잡아 ‘경제 영토’를 넓히겠다는 계획이었다.
올해는 2004년 4월 발효된 한·칠레 FTA로부터 20년째 되는 해이다. FTA는 반도체·휴대폰 등 IT(정보기술) 제품 수출 확대 발판이 된 ITA(정보기술협정) 등 초(超)세계화(hyper globalization) 바람에 맞춰 우리나라를 중진국 넘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시킨 일등 공신이자 기폭제 역할을 했다. 2004년 칠레에 이어, 2006년 싱가포르·EFTA(유럽자유무역연합), 2007년 아세안과 FTA가 발효되며 우리 무역은 강해지기 시작했다. 1983년 이후 26년 동안 10위권 밖을 맴돌던 우리 무역 규모는 2009년 톱10에 진입했고, 미국·EU(유럽연합) 등에 시장을 열며 한 단계 더 도약했다. 2000년대 초반 자동차 판매 세계 8위 현대차그룹은 FTA 효과 속에 2022년 세계 3위에 올랐고, 지난해 자동차 수출은 역대 최대인 709억달러(약 98조원)를 기록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관세 혜택을 무기로 수출국을 세계 73국으로 늘렸고, 화장품·의약품 등도 FTA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FTA에 나서기 전만 해도 G7(7국)과 무섭게 성장하던 중국, 중계 무역 강국인 네덜란드·벨기에는 난공불락 무역 강국이었지만 어느새 몇몇은 우리 앞자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경제 운동장이 넓어지고, 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2000년대 초반 1만6000달러대였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2017년 선진국 문턱이라는 3만달러를 돌파했다. 1960~70년대 산업화가 6·25전쟁 후 세계 최빈국을 중진국으로 올려놨다면, 중진국 함정에 빠질 것이란 우려를 불식시키고 우리를 선진국 대열로 이끄는 핵심엔 FTA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