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들이 군함으로 북미 방산(防産)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과 별개로 선박을 만들고 수리하는 인프라가 취약해져 납기 지연이 잦아지면서,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생산성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방한해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조선소를 둘러본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성 장관은 이달 초 미국 해군연맹이 주최한 행사에서 “한국, 일본 같은 동맹국은 미국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이지스함을 포함한 고품질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며 “배를 만드는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언제 인도될지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앞선 (한국) 조선사를 유치해 미국 자회사를 열고 미국 조선소에 투자할 기회가 있다”고 했다.
군함 사업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은 우선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으로 현지에서 사업 기반을 닦고, 장기적으로 함정 건조까지 수주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선결 과제인 현지 조선소 확보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 제정한 ‘존스법’을 통해 미국 내에서 건조한 선박만 미국 내 운항을 허용하고 있다. 자국 내 선박 건조를 의무화한 것인데, 해군 군함도 같은 법을 적용받아 미 해군 함정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현지 조선소 확보가 필수다. 다만, 존스법 영향으로 사실상 경쟁 없이 나눠 먹기식으로 배정됐던 건조 물량, 비싼 현지 인건비 등이 맞물려 높은 단가, 납기 지연 등 문제가 커졌다.
HD현대중공업은 작년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에 필요한 자격인 MRSA를 신청해 올해 초 조선소 실사까지 완료했다. 지난 24일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필리조선소와 현지 정부가 발주하는 함정·관공선 신조(新造) 및 MRO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협력을 확대했다. 한화오션도 작년 함정 MRO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상선 수주보다 특수선 사업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모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올해 577억6000만달러(약 78조원) 수준이고, 미국 시장 규모만 연간 약 20조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