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해왔던대로 하면, 이 대한민국 괜찮은 겁니까?”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중구 프레이저플레이스호텔에서 상의 회장 연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우리는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며 “지금까지 하던 방법이 효과가 없었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 결과로 기업에 불리한 환경이 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원래도 여소야대였으니,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상관 없이 저성장, 저출산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 경제계와 시민사회가 모두 함께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한 말이다. 최 회장은 “앞으로는 좀 더 과학적이고, 통계적 접근을 통해 더 포용적이고 합리적인 법과 규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대한상의도 소통플랫폼(‘소플’) 등을 통해 많은 데이터를 뽑고, 사람들의 의견이 어떤지 한 목소리로 모아보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난 3월, 임기 3년의 상의 회장직에 재선출됐다.
최 회장이 이같이 ‘새로운 방법론’을 언급한 것은, 세계 자유무역주의와 WTO 질서가 무너지고 ‘자국 우선주의’와 ‘국가별 대항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최 회장의 한 참모는 설명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한국과 일본이 EU와 같은 경제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을 저성장 해결을 위한 하나의 대책으로 제시한 적이 있는데, 이와 같은 파격적인 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SK 회장인 최 회장은 반도체와 배터리 업황에 대해서도 전망했다. 반도체는 ‘생성형 AI’ 경쟁으로 지난 1분기 실적이 회복됐지만, 호황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작년에 너무 나빴기 때문에 올해 상대적으로 좋아지는 것처럼 보인다”며 “코로나 때 발생한 초과 수요가 빠지면서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이런 식으로 주기가 짧은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묻자 “오랫동안 본 사람이라 같이 인사하고 밥 먹었다”며 “제품 빨리 나오게 우리 R&D를 서둘러달라고 하더라”고 했다. SK하이닉스는 AI용 메모리반도체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해선 일시적 현상이라고 봤다. 최 회장은 “ESG와 기후변화 대응이 퇴조하는 현상이긴한데, 하지만 이런 트렌드도 그리 오래 가지 않고 결국은 돌아올 것으로 믿고 있다”며 “(세계가) 전기차를 영원히 안하고 없어질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안하면 훨씬 더 비용이 커질텐데 하는 걱정은 있다”고 말했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후보가 IRA(인플레감축법)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등 우리 기업의 반도체·배터리 대미 투자에 우려가 나오는데 대해서도 “선거를 하다 보면 증폭된 메시지를 누군가는 내게 돼 있는데, 거기에 너무 일희일비를 할 거는 아닌 것 같다”며 “의회가 따라가지 않는 이상은 법을 바꿔야 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의 관계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사해야 되는 입장에서, 누군가 ‘나 저 고객이 싫어’ 이런걸 나타내는 건 장사하는 사람의 기본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한민국은 수출도 해야 되고 경제협력을 많이 해야 되는 입장이라 중국은 매우 중요한 고객이자 판매처이고 협력처”라고 했다. 그러면서 “감정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과 계산으로 합리적인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며 “우리는 우리 혼자 살 수 있는 경제적 모델을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 회장은 두번째 임기 동안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묻자 “반기업 정서를 개선하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나도 기업할거야’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번째 임기에도 ‘ERT’(신기업가정신협의회: 기업인들의 사회 공헌 활동)나 ‘소통 플랫폼’ 등 하던 일은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이번엔 확실히 사회에 많이 기여하도록,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게 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