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동량 기준 미국 4위 동부 조지아주(州) 사바나항(Savannah Port)을 운영하는 조지아주 항만청은 지난달 말 개최한 무역콘퍼런스에서 “향후 10년간 항만 및 복합 운송 인프라에 45억달러(약 6조1300억원) 이상 투자하고, 현재 7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 규모 인프라를 2030년까지 1200만TEU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미국 해상 물류의 중심이었던 서부 항만이 아닌 동부 조지아주 항만청의 이런 공격적 투자를 업계에선 물류 중심축이 서안에서 동안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한다. 서부 항만이 중국산 제품 수입 감소, 고질적인 파업 리스크로 주춤한 사이 전기차·배터리 등 제조업 투자가 몰린 동부 지역 항만이 급성장했고, 이에 따라 글로벌 시장과 미국 시장을 연결하는 물류망도 변화하는 것이다.
사바나항은 최근 10년간 물동량 증가율(연평균 4.4%)이 미국 항만 중 가장 높았다. 작년 약 492만TEU를 처리했고, 올해 1분기도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로스앤젤레스·롱비치, 시애틀 타코마 등 주요 서부 항만을 통해 들어오는 컨테이너 물동량의 10년간 연평균 증가율은 –2.1%∼1.8%로 뉴욕·뉴저지, 사바나, 휴스턴 등 동·남부항만 증가율(3.4%∼7.6%)과 비교해서 크게 낮았다.
◇車·배터리 동부 ‘오토 앨리’ 물류 확대
‘미국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주(州)’ 1위에 선정된 조지아주는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SK온, 한화큐셀, 현대모비스 등 한국 기업의 투자도 몰리고 있다. 조지아주 외에도 동남부 플로리다에서 중북부 미시간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자동차 생산 거점 밀집 지역인 ‘오토 앨리(Auto Alley)’, 삼성전자의 텍사스주 반도체 공장 등 영향으로 동남부 물류의 중요도가 더 커졌다. 현지 진출한 기업 사이에서 “동부 항만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데다 서부 대비 항만 노조 조직률이 낮아 물류가 안정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터미널·창고·철도 등 인프라 수요가 늘고 있다.
이에 국내 물류 기관·기업도 미국 동부 지역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함께 약 6000억원을 투자하는 북미 물류센터 프로젝트로, 올해 하반기 뉴저지에 약 1만㎡(3000평) 규모 물류센터를 착공할 예정이다. 미국 동남부 지역에 진출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현지 설비 물류 3000억원어치를 수주했고, 향후 시장 확대도 기대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지난 3월 미국 2위 항만을 운영하는 뉴욕·뉴저지항만공사와 자매항 협약을 체결했다. 양 항만의 정보 교환뿐 아니라 가뭄으로 인한 파나마 운항 차질, 홍해 사태 등 해상 공급망 혼란 등에 긴밀히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물류기업 현대글로비스도 기존 36만㎡(11만평) 규모 필라델피아 항구의 완성차 물류 거점을 2019년 64만㎡(19만평) 규모로 확대했다. 완성차 보관 규모가 기존 1만3000대에서 3만6000대로 약 3배로 늘었다.
◇북미 거점 확보 필요… 경쟁국에 가격 경쟁 밀려
미국 동부 물류 거점을 늘려가고 있지만, 주요 경쟁국 대비 ‘항만 터미널’ 등 핵심 인프라 확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급망 대란 때 선사들은 자국 선박을 자사가 보유한 항만터미널에 우선 접안시켜 화물을 처리한다. 터미널이 없는 선사는 화물 처리가 늦어져 수출 기업의 경영 리스크가 커진다. 한국 기업은 서부 시애틀 일부 지역에만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고 동부에는 없다.
최근 매물로 나왔던 뉴욕·뉴저지 항만 터미널을 놓친 건 특히 아쉽다는 평가다. 세계 3위권 선사인 프랑스 CMA-CGM은 작년 8월 뉴저지 GCT 컨테이너 터미널(연간 200만TEU 규모)을 약 3조원에 인수했다. 한국 최대 해운사 HMM도 인수를 검토했지만 가격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전해졌다. CMA-CGM은 향후 10년간 터미널 처리 용량을 50% 이상 늘릴 계획이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미물류공급망센터장은 “다른 국가의 물류 시설 이용으로 인한 상품 가격 경쟁력 저하, 비용 증가, 배송 문제 등 기업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한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며 “물류 기업이 해외 거점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 위해선 화주 기업과 안정적인 장기 계약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협의체를 꾸려 양측 협력을 도출하고, 무엇보다 물류 공급망 해외 진출 사업을 일종의 국가 인프라로 보고 보조금이나 민간 금융 혜택 등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