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우유 2개 묶음’ ‘요거트 4개 묶음’ 할인 상품처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에도 번들 상품인 ‘OTT 묶음 구독권’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여러 개 OTT를 동시에 구독하면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여러 OTT에 흩어져 있는 콘텐츠를 볼 때 비용 부담을 덜 수 있고, OTT 업체들은 더 많은 구독자를 유치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8일(현지 시각) 월트디즈니 산하 OTT 디즈니플러스·훌루와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의 OTT 맥스는 올여름 미국에서 번들 상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방식은 나오지 않았지만 디즈니가 구독료를 한 번에 받은 후 워너브러더스 측에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에서 이들 OTT를 전부 구독하려면 월 25달러(광고 연동 요금제 기준) 또는 48달러(광고 없는 요금제 기준)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3개 OTT 콘텐츠를 모두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래픽=백형선

◇OTT 뭉쳐야 산다, 번들링의 시대

디즈니는 이미 자사가 운영하는 OTT인 디즈니플러스와 훌루, ESPN플러스를 대상으로 번들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앱은 따로 운영하면서도 구독자를 함께 유치하는 것이다. 디즈니플러스는 올 1분기 북미(미국·캐나다) 유료 구독자 수를 4610만명에서 5400만명으로 790만명(17%) 늘렸는데, 번들 상품 덕을 본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 말엔 디즈니플러스 앱에서 바로 훌루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앱도 개편했다.

다른 OTT 업체들도 번들 상품을 고심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 TV 플러스와 파라마운트플러스가 두 서비스를 함께 구독하면 가격을 할인해주는 번들 상품 판매를 논의 중”이라고 했다. 미 통신사 버라이즌은 10달러를 내면 넷플릭스와 맥스를 동시에 구독할 수 있는 결합 상품도 내놨다. 두 OTT를 각각 따로 구독할 때보다 한 달에 6.98달러(약 9000원)를 절약하는 것이다.

OTT 번들 상품은 가입자들의 구독 기간을 유지하는 효과도 있다. 한 OTT에서 더 이상 볼 콘텐츠가 없어도 다른 OTT 콘텐츠를 보기 위해 번들 상품 구독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안테나에 따르면 작년 미국 OTT 유료 구독자의 4분의 1이 직전 2년 동안 3개 이상의 OTT 서비스를 해지했다. OTT 구독료가 오르자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을 때만 1~2개월 구독하고 끊는 흐름이 보편화된 것이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는 “OTT 업체로선 자사와는 다른 유형의 콘텐츠를 가진 OTT들과 적극 협업해 구독자 이탈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번들 상품 시장은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넷플릭스 맞서기 위해 경쟁사와 협력

번들 상품 대신 아예 힘을 합쳐 통합 OTT를 내놓겠다는 곳들도 등장했다. 디즈니는 지난 2월 WBD, 폭스와 함께 스포츠 전용 OTT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 회사가 지분 3분의 1씩을 보유한 합작 회사를 설립하고, 올가을 새 플랫폼을 출시할 예정이다. 미국프로농구(NBA)·미국프로풋볼리그(NFL)를 포함한 주요 프로 스포츠 리그와 대학 스포츠 경기 등을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경쟁 과열로 스포츠 중계권 가격이 갈수록 오르는 상황에서, OTT 업체들의 비용 절감 효과도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글로벌 1위 넷플릭스에 맞서기 위해 합병하는 OTT들도 있다. 더 큰 적과 싸우기 위해 한때 경쟁하던 적과의 동침을 택한 셈이다. 일본에선 작년 토종 OTT인 유넥스트가 또 다른 토종 OTT인 파라비를 합병하고 양사 콘텐츠를 통합했다. 아마존프라임비디오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 업체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뭉치지 않고는 생존이 어렵다는 절박함이 합병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토종 OTT인 티빙과 웨이브가 작년 말부터 합병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합병 비율 등 중요 안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며 이르면 상반기 내 합병안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