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동해시 GS동해전력의 석탄 화력발전소가 송전(送電) 선로 부족으로 전기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전기를 만들 수 있지만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 선로 건설이 수년째 지연되면서 발전소 가동을 멈춘 것이다. 이에 발전소를 돌리는 데 필요한 석탄도 최소 용량만 남겨놓은 상태다. 사진은 지난 8일 발전소 직원이 빈 석탄 저장소를 바라보는 모습./김지호 기자

‘발전량 0′.

지난 8일 오후 방문한 강원 동해시 GS동해전력의 석탄화력발전소 제어실 전광판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595MW급 발전기 2기를 운영하는 이곳은 지난달 16일부터 가동을 전면 중단한 이후 전력을 생산하지 않고 있다. 발전소에 들어가 보니 최소한의 조명만 켜진 채 적막이 흐르고 한기가 서렸다. 정상 가동 때는 땀이 날 정도로 덥고, 소음이 심해 귀마개를 반드시 끼어야만 하는 곳이다. 동해항에 들어온 운반선에서 발전소까지 석탄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고, 최대 30만t까지 가능한 석탄 저장고에는 꼭 남겨 둬야 하는 최소 용량인 석탄 10만t이 있었다. 저장고 곳곳이 비어서 가득 차 있던 때의 석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가동이 중단된 또 다른 발전기는 터빈 등이 분리된 채로 협력업체 직원들이 정비 중이었다.

이곳을 포함해 삼성물산과 한국남동발전이 각각 지분 29%를 보유한 강릉에코파워,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지분 29%를 보유한 삼척블루파워와 한국남부발전이 운영하는 삼척빛드림까지 동해안권 석탄화력발전소가 운전하는 8기 모두 지난달 중순부터 ‘올 스톱’해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送電)선로 건설이 수년째 지연되면서 전기를 생산할 시설을 갖추고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공장을 지어 자동차를 만드는 데도 도로가 없어 운송할 수 없는 셈이다.

송전선로 부족은 정부와 한전의 송전선 건설 계획이 7년 이상 늦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당초 2019년 동해안권에서 경기 가평 등으로 이어지는 8GW짜리 직류 송전 방식 송전선로(HVDC)를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2026년 말까지 미뤄졌다. 송전탑 등 혐오 시설 설치에 대한 주민 반발이 컸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탈원전·탈석탄 기조 속에서 한전이 주민 반발을 이유로 들어 송전선로 건설에 손을 놓았다. 발전 업계 관계자는 “전 정부의 정책 기조로 신규 석탄 발전 사업자가 완공을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한전이 계획된 송전선로 건설을 안일하게 방치했다”고 했다.

멈춰 있는 동해안권 석탄 발전 8기의 발전 총량은 7.4GW로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들여 2042년까지 반도체 공장을 5곳 지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예상 전력 수요인 7GW를 수용하고도 남는 규모다. 또한 동해안권 발전 4사의 건설 투자비는 총 16조원이 넘는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들여 대규모 전력 생산 시설을 지어 놓고도 송전선로가 부족해 발전 시설이 무용지물이 된 실정이다.

강릉에코파워는 2022년, 삼척블루파워는 올해부터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상업 운전에 들어간 삼척빛드림의 발전기도 2016년에 상업 운전을 시작해 상대적으로 새 발전기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신규 발전기는 이전에 지은 것보다 효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이 적게 나온다”고 말했다.

결국 송전선로 부족으로 발전 원가가 비교적 낮은 석탄 발전 대신 30%가량 비싼 LNG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가 수도권에 공급되고 있다. 이는 전기 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블랙아웃 우려도 나온다. 블랙아웃은 전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발생하기도 하고 전기가 과잉 공급돼도 송·배전망이 감당하지 못해 벌어질 수 있다.

송전선 부족으로 가동을 멈춘 GS동해전력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김지호 기자

강원 강릉에서 경북 울진에 이르는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선로 용량은 11.4GW다. 동해안권 원전 8기(8.7GW)와 석탄 발전 8기만 해도 총 16GW라 송전선로는 과포화 상태다. 한전과 전력거래소에서 원전과 신재생에너지(1.9GW) 등에 송전 용량을 우선 할당하면서 석탄 발전이 멈추게 됐다.

이로 인해 오는 7월 14일까지는 석탄 발전 8기의 가동이 전면 중단될 계획이다. 7월 중순 이후 9월까지는 한울원전 3·5호기가 정비에 들어가면서 석탄 발전 2~3기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되나, 전력 수요가 감소하는 10~11월에는 다시 멈출 가능성이 크다.

송전선로 건설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동해안권 송전 용량은 총 19.4GW로 현재 운전 중인 모든 발전량을 수용할 수 있었다. 송전망 건설이 지연되는 사이 신한울1·2호기(2.8GW)가 상업 운전에 들어갔고 강릉에코파워와 삼척블루파워까지 완공되며 발전 용량은 되레 늘었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에서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최대한 지역 주민을 설득해 건설 지연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2월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주관으로 석탄 발전사들과 간담회를 진행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이후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업계에서는 2026년에도 완공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송전선로 확충 계획에 따라 연간 가동률 80%대를 기대하고 발전 사업에 뛰어든 강릉에코파워, 삼척블루파워 등은 계획보다 확연히 낮은 연간 10~20%대 가동률로 당장 부도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종전에 발전 사업을 하던 GS동해전력도 송전망은 그대로인데 신규 사업자가 생겨 송전 용량을 나눠 쓰면서 차질이 생겼다.

민간 사업자는 전기를 생산해 한전에 판매함으로써 인건비, 투자비, 연료비 등 발전 원가를 회수해야 한다. 하지만 계획보다 턱없이 부족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게 되면서 발전 원가를 회수하지 못하게 됐다. GS동해전력, 강릉에코파워, 삼척블루파워는 올해 정상 가동 때보다 각각 800억원, 3000억원, 3000억원 정도를 지급받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송전망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수년 안에 투자받은 금액의 원리금 상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강릉에코파워 관계자는 “원금 상환을 3년 유예받아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이미 디폴트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발전소가 멈추면서 직원들의 고용 불안은 물론 하역 노동자를 비롯한 협력업체들의 매출 감소 등 지역 경제에 광범위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