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유통기업 이랜드월드의 중국 법인인 이랜드차이나의 올해 예상 매출은 1조6000억원이다.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중국에서 작년보다 20% 이상 성장을 목표로 잡은 것이다. 이랜드차이나의 최근 추세라면 내년엔 매출 2조원을 넘기고, 한국 매출(작년 기준 2조1300억원)까지 추월할 가능성이 크다. 휴대폰·자동차·백화점·화장품 할 것 없이 우리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이나 현대차그룹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대로 추락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업종 가릴 것 없이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우리 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랜드의 ‘나 홀로 중국 시장 성장’은 이례적이다.
이랜드차이나 성장의 비결은 뭘까. 가장 큰 비결은 조직 혁신과 현지화라는 분석이다. 2019년 이랜드월드 대표를 맡은 1978년생 최운식 대표는 작년 한·중 패션사업 부문 대표를 맡으면서 중국법인 조직을 새로 다듬었다고 한다. 현지 직원을 과감하게 임원으로 기용했다. 또 브랜드를 리뉴얼하면서 고급화했고, 한국에서 디자인 기획부터 발주하고 생산해서 판매까지 마무리하는 데 이틀이 걸리는 ‘2일 체제’를 중국에선 ‘5일 체제’로 이식해 좋은 반응을 거뒀다. 중국에 진출한 다른 한국 기업들이 엄두를 내지 못한 과감한 도전을 이어간 것이다. 최운식 대표는 “남다른 일을 저질러야 남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현지 임원 절반, 중국인으로 채웠다
이랜드차이나는 작년 부대표 격인 영업총괄직에 30대 후반의 현지 중국인을 임명했다. 이랜드차이나에서 일하다 퇴사한 직원을 다시 스카우트해서 데려왔다. 최 대표는 “예전부터 능력 있고 스마트하다고 눈여겨봤던 직원이어서 삼고초려를 해서 데려왔다”고 했다. 또 브랜드 매니저, 지사장 자리 등 주요 직책 절반을 중국 직원으로 채웠다. 회사 분위기는 곧바로 달라졌다고 한다. 최 대표는 “나도 열심히 하면 이 회사에서 임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중국 현지 직원의 일하는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며 “이는 매출이나 영업이익 증가로 연결됐다”고 했다. 현지 매장 직원들과 소통도 늘렸다. 최 대표는 올 연말까지 전국 3000개 매장을 모두 돌면서 직원들과 직접 만나고, 매장을 챙긴다는 계획이다.
◇한국 성공 사례, 중국에 이식하다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는 발 빠르게 중국에 적용했다. 최 대표는 중국 사업을 맡자마자 브랜드 고급화부터 시작했다. 여성복 브랜드 이랜드에 고급 원단을 적용하고 클래식한 상품으로 리뉴얼했다. 매출은 수직으로 상승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 스파오(SPAO)는 진열 제품부터 매장 음악까지 한국 매장과 똑같이 만들어 마치 한국에서 쇼핑하는 기분을 느끼도록 해 중국 MZ세대를 잡았다.
민감한 중국 MZ 소비자를 잡기 위해 빅데이터 분석에 맞춰 디자인부터 발주·생산·매장 판매까지 5일 만에 끝내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재고가 남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자 취향에 맞는 새 옷을 빠르게 생산, 공급할 수 있다. 생산 속도를 맞출 수 있는 현지 협력 업체를 광저우·항저우 시장을 뒤져 찾아냈고, 중국에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베트남·인도 공장에서 대체 생산해 중국 시장으로 공급하는 비상시스템도 마련했다.
◇ 30년간 버티며 얻은 관시(關係)의 힘
작년 6월 상하이에 문을 연 상하이 이랜드 E-이노베이션 밸리(EIV)는 35만9001㎡(10만8598평) 규모의 대규모 산업단지다. 이랜드차이나 본사부터 연구·개발(R&D)센터, 쇼핑몰, 스마트 물류 시스템, 한중 비즈니스 센터, 중진공 상하이 GBC, 라이브커머스 스튜디오까지 모아놓았다. 또 중국 내수 업체와 협력사, 중국 로컬 공장도 입주시켰다. 의류를 기획·디자인하면 바로 옆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 대표는 “현재 중국에서 유통되는 전체 물량의 10%를 이곳에서 소화하고 있다”면서 “적은 물량도 더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중국 업체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고 했다. 그는 “이런 시스템을 통해 중국 생산 본부 전체 프로세스를 혁신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랜드차이나는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으로 다른 기업들이 철수할 때도 중국에서 버텼고, 지난 30년 동안 중국에 2조원 넘는 세금을 냈다. 중국 현지 기업도 쉽지 않다는 ‘중화자선상(中華慈善賞)’을 네 차례 수상했다. 최 대표는 “이랜드차이나가 지난 30년 동안 직접 중국 인재를 키우고, 현지 네트워크를 다져오면서 쌓아온 신뢰가 지금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면서 “중국에서 새로운 신화를 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