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인천시 중구 인천공항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관세 주무관들이 해외 직구 물품을 살펴보고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2023.11.22/뉴스1

정부가 지난 16일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한 뒤 소비자들의 분노가 이어졌다. 육아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맘카페에서 시작된 반발은 커피, 문구, 오디오, 전자 기타 동호회를 거쳐 DIY(직접 제작) 취미를 가진 사람 등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정부가 ‘소비자 안전 강화’를 내세웠지만, 소비자들은 정부가 ‘선택의 자유’는 물론 고물가 시대에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손품’을 팔아가는 서민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맘카페와 각종 커뮤니티에선 ‘K 갈라파고스 정책’ ‘21세기판 쇄국정책’ ‘직구 계엄령’ 등 정부의 발표를 조롱하는 신조어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래픽=양인성

◇”같은 제품 더 비싸게 사라고요?” 분노한 사람들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정책에는 가품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방안, 해외 플랫폼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대책, 대형 마트 새벽 배송 허용 등 국내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지원책 등이 종합적으로 담겼다. 소비자들의 분노를 일으킨 건 ‘안전인증 없는 직구 제품의 해외 직구 전면 금지’였다. 정부는 어린이 제품 34개 품목과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은 국가인증통합마크 KC 인증을 받지 않은 경우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최초 발표는 몇천 원, 몇만 원을 아끼기 위해 손품을 팔아가며 해외 직구에 의존하고 있는 소비자들을 직격했다. 2021년 5조1000억원 규모였던 우리 국민의 해외 직구 거래액은 작년 6조8000억원까지 늘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해외 직구는 일상이 됐다. 작년 해외 직구 거래액은 국내 대형마트사인 롯데마트의 작년 매출(5조7347억원)보다 규모가 크다. 초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김모(40)씨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몇 시간씩 돌아다니며 꼭 필요한 아이들 옷, 장난감을 산다”며 “정부 발표를 보고 ‘정책 만드는 사람들은 국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말 모르는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정부의 발표에 당장 육아를 하는 부모들이 뒤집어졌다. 경기 파주의 한 임신부는 “육아 용품 해외 직구까지 막으면 해외 직구 가격의 2배, 3배를 주고 사야 하는데 말로만 저출생 해결하겠다고 하고 도통 부모들에게 정부가 해주는 게 없다”고 말했다. 맘카페에선 “고물가에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는 거냐” “아이들 놀이 수단까지 빼앗아갔다” 등의 분노 가득한 글이 쏟아졌다. 맘카페를 중심으로 해외 직구 금지에 대비한 사재기 목록이 돌기도 했다.

그래픽=양인성

◇”중국 잡으려다 美·유럽 시장도 막았다”

‘해외 직구 원천 금지’ 품목이 취미 생활과 연결되는 사람들도 분노의 대열에 합류했다. 어린이 제품에 연결되는 피규어 동호회, 문구 마니아들과 전기·생활용품을 통해 직접 전자제품을 만드는 DIY족이 분노에 가세했다. 해외에서 저렴하게 부품을 구입해 사용하는 전자 기타 마니아들, 커피 애호가 등에게도 확산됐다.

한 컴퓨터 커뮤니티에는 컴퓨터 부품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올라왔다. “미국, 유럽, 독일, EU, 중국 인증 다 받았는데 우주 최고 선진국 대한민국 KC 인증 없으니 직구 불가.” 한국을 제외한 주요 국가의 인증을 받았지만, 한국의 KC 인증을 받지 않아 앞으로 살 수 없게 된다고 비판한 것이다. 회사를 다니며 전자제품 조립을 취미로 하는 안모(42)씨는 “해외에서 5000원에 판매하는 걸 국내에선 5만~10만원에 사야 한다”며 “똑같은 제품이 단순히 중간 업자를 끼고 ‘택갈이’(해외 물건을 수입해서 상표나 겉포장만 교체해서 파는 것)를 해서 폭리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정책 발표 때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중국의 이커머스 업체인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알·테·쉬’의 국내 공습에 칼을 빼들었다는 말이 나왔다. 정부는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직구길을 막았다는 비판까지 쏟아지자 결국 기존 발표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