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부터 방시혁 하이브 의장, 김택진 등 엔터테인먼트·신생기업 대표까지 아우르는 국내 주요 기업인 20명을 초청해 면담을 가졌다. 그간 미·중 등 주요국 정상들이 방한할 때 소수의 대기업 총수를 초청해 면담한 적은 있지만, 엔터·패션·게임 분야 대표들까지 대규모 인원을 초청해 만난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첨단 기술을 미래의 석유로 삼아 제2의 도약을 추진 중인 UAE가 ‘K방산·원전’뿐 아니라 ‘K반도체·엔터·패션’ 등을 아우르는 전방위 협력을 모색하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날 면담 참석자 20명은 UAE 대사관 측이 직접 선정했고, 일일이 전화로 개별 연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국내 경제단체나 우리 정부를 통해 기업인을 모으던 관행을 깨고, 자국에 투자를 유치하고 싶은 기업들을 엄선한 것으로 보인다. 면담에 초청된 패션 기업 무신사 관계자는 “일주일 전 UAE 대통령 면담에 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며 “오늘 구체적인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요청이 온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8일 무함마드 UAE 대통령 면담에 초청된 20명의 기업인은 이날 낮 12시 30분부터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 잇따라 도착했다. 기업인들은 UAE와 대통령실 측 경호원 안내에 따라 호텔 16층의 한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스위트룸으로 안내됐다.
이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같은 스위트룸에 차례로 들어가 무함마드 대통령을 면담했다. 대기업 총수 등 9명은 오후 1시 30분부터 2시 20분까지 50분, 스타트업 대표 등 11명은 2시 20분부터 40분까지 20분을 만나기로 계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첫 번째 면담은 조금 늦게 시작돼 실제 주어진 시간은 40분 정도였다”고 말했다.
첫 번째 면담에는 이재용·최태원·정의선 회장 외에 허태수 GS 회장, 이재현 CJ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구본상 LIG 회장 등 9명이 참석했다. 두 번째 면담엔 방시혁 의장 외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송치형 두나무 의장,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 이해준 IMM프라이빗에쿼티 대표, 이준표 SBVA(옛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등 11명이 참석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정의선 회장은 “(UAE 대통령은) 한국을 굉장히 좋아해 앞으로 많이 같이 하자고 했고 좋은 말씀을 많이 나눴다”고 말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첫 티타임은 대기업 중심으로 격식 있게 앉아서 진행하고, 두 번째는 스탠딩 형식으로 캐주얼하게 진행했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이 자사 사업을 소개하는 시간도 1~2분 주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UAE 측이 선정한 기업들은 중후장대부터 소프트 산업까지 광범위했고, 이들 중에는 아직 협력 관계가 없는 곳도 많았다”며 “UAE가 한국 기업에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장면은 지난 2022년 방한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곳에 머무르며 재계 총수급 8명을 만났던 당시가 연상된다는 말도 나왔다. 실제 방한한 외국 정상이 기업인들을 다수 면담한 사례는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정도다. 빈살만 왕세자는 2019년 삼성 승지원에서 5대 그룹 총수들과 면담한 적도 있다. 반면 지난 2022년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국내 기업인 중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만 유일하게 독대했다. 최근 방한한 리창 중국 총리도 지난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만 별도로 만났다.
우리 기업들은 UAE에서 원전·방산·유전 개발 등에서 대규모 협력을 해왔고, 최근엔 AI·수소에너지 등 다양한 신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 54조원 규모의 바라카 원전 수주, 2022년 4조원 규모의 ‘천궁II’(지대공 미사일) 수출 계약이 대표 협력 사례다. UAE는 한국의 14위 교역국이며,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