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빌딩의 모습. /뉴스1

30일 오후 2시 시작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재판. 최종 선고 결과를 낭독하기 전 판사가 “SK 주식도 재산 분할 대상”이라고 밝히자, SK그룹 지주회사 SK㈜의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잠잠했던 주가는 장 마감(오후 3시 30분)까지 약 1시간 사이 9.26% 급등해 15만8100원을 기록했다. 이날 법원이 1조3808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재산 분할하라고 판결하면서, 재계 2위 대기업 SK그룹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노 관장은 2심 재판에서 ‘2조원 현금 재산 분할’을 주장했는데, 상당 부분이 인정됐다. 이 판결이 확정될 경우 최 회장은 보유한 SK㈜ 주식까지 팔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계열사 219개를 보유한 SK그룹은 지주회사인 SK㈜와 SK디스커버리가 중간지주회사 또는 핵심 자회사를 통해 나머지 계열사를 지배하는 수직 구조 형태다.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스퀘어 등 다수 핵심 계열사의 최대주주인 SK㈜가 지배 구조의 핵심이다. 최 회장이 17.73%(약 2조원)로 최대 주주다.

그래픽=김성규

앞서 노 관장이 ‘주식 분할’이 아니라 ‘현금 분할’을 요구했기 때문에 원칙은 1조3808억원 현금 지급이다. 양측 합의에 따라 주식 현물 양도를 논의할 가능성도 일부 남아 있지만, 최 회장은 약 1조원 현금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 회장 개인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SK㈜ 지분 17.73%는 이날 종가 기준 약 2조514억원이다. SK케미칼(3.21%), SK디스커버리(3.11%) 등 지분도 일부 보유하고 있지만, 약 40억원대로 크지 않다. 작년 기준 SK그룹에서 급여와 배당으로 받은 600억원대 현금, SK㈜ 주식담보대출도 활용하겠지만 1조원 마련은 쉽지 않다는 평가다.

경영권의 핵심인 SK㈜ 주식 매각은 최후의 보루라는 평가다. 우선 최 회장이 2017년 약 2600억원에 취득한 비상장사 SK실트론 주식 29.4% 매각이 유력하다. SK실트론은 국내 유일 웨이퍼(반도체 원판) 기업으로 과점 시장인 글로벌 시장에서 4~5위권을 유지하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 고객사와 안정적인 공급 계약을 이어 가면서 시장 가치가 대폭 상승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비상장 주식이 최대 1조원 정도로 평가받을 경우, 이를 활용해 SK㈜ 지분은 지키면서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급매로 내놓을 경우 제 값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SK실트론 매각 등의 재원 조달이 불발되고 만약 1조원을 SK㈜ 주식으로만 마련해야 한다면 30일 종가 기준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 중 약 67%를 팔아야 한다. 최 회장의 지분율은 17%대에서 6%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 SK그룹은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 합계 약 25%로 경영권을 유지해 왔는데 핵심인 최 회장 지분율이 낮아질수록 경영권은 취약해진다. 현금 1조원을 받은 노 관장이 SK㈜ 주식 매입을 통해 경영권 다툼에 뛰어들 수 있고, 헤지펀드 등 제3자가 취약해진 SK그룹 경영권을 타깃으로 뛰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2003년 소버린 자산운용이 SK㈜ 주식을 대량 매입하고 지분율을 14.99%까지 늘려 최대 주주에 오른 뒤, 최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날 제기된 경영권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증권가에서는 “최 회장이 SK㈜ 지분 일부를 매각하더라도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도 지분을 약 6% 보유하고 있고, SK그룹의 위상을 감안하면 우호 지분 추가도 가능할 것”이라며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확률은 낮다”고 했다.

SK㈜가 보유한 자사주(약 25%)를 활용해 경영권 방어에 나설 수도 있다. 보유한 자사주를 외부에 매각하거나 주식 교환을 통해 의결권을 부활시켜 백기사를 확보할 수 있다. SK그룹은 2003년 소버린 분쟁 때도 보유 중인 자사주 약 4.5%를 하나은행 등 채권은행에 매각해 우군으로 확보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