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빌딩의 모습. /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 소송 2심에서 1조3808억원 재산분할 판결을 받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측이 2일 ‘SK그룹 경영권에 참여하거나 우호 지분으로 남을지 여부는 정해진 것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날 노 관장 측 한 법률대리인이 “노 관장은 SK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SK㈜의 우호 지분으로 남겠다”는 입장을 언론에 전하자 하루 만에 “변호인 개인 의견이었다”며 정정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2심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이 SK그룹에 유입됐고, 이 비자금이 SK그룹 급성장에 기여했다’는 취지로 판단하며 역대 최대인 약 1조원 재산 분할을 결정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공식 인정되지 않았던 ‘정경유착과 비자금’ ‘권력의 보호막과 무형적 지원 기여도’까지 이번 판결에 등장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재계에선 “정경유착 비자금 유입이 기정사실화한 것도 의아스럽지만, 비자금 유입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그룹 성장에 주도적인 기여를 했다는 판단은 너무 비약적”이라는 입장이다. 1999년 김대중 정부가 결정한 LG반도체-현대전자 합병이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경영난으로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특혜’로 비춰졌던 정부의 보호막이 실패로 돌아간 전례도 있다는 반론까지 나온다.

그래픽=이철원

◇SK 이동통신사업 진출은 특혜였나

SK ‘정경유착’ 논란의 핵심은 재계 2위 그룹으로 성장하는 데 주역할을 한 SK텔레콤이다. 2심 재판부는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에 대해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성공적인 경영에는 집안의 인척(사돈) 관계가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1990년 당시 SK그룹 경영기획실 소속이었던 최태원 회장이 청와대에서 무선통신을 시연한 것은, 사위가 아닌 일반 기업인이라면 기회 자체를 가지기 어려웠을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무조건적 특혜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상당하다. 최종현 SK그룹(당시 선경) 선대회장은 1980년 유공 인수 이후부터 정보통신사업을 확대했다. 1984년부터 미국 대형 이동통신사 US셀룰러에 100만달러를 투자하는 등 노력을 해 1991년 선경텔레콤을 설립했다.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 기자회견 하는 故최종현 회장 - 1992년 8월 20일 최종현 당시 선경그룹(현 SK그룹) 회장이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된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선경그룹은 이후 ‘최 회장과 사돈인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특혜’ 주장이 제기되자 일주일 뒤 사업권을 반납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제1이동통신(한국이동통신) 민영화 입찰에서 사업자로 선정됐고, 현재 SK텔레콤으로 성장했다. /연합뉴스

이후 노태우 정부 시절 1992년 8월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 경쟁에서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대표 등이 “현직 대통령 사돈 기업에 사업권을 부여한 것은 특혜”라고 비판하자, 사업권을 일주일 만에 반납했다. 이어 SK 측은 “오해 우려가 없는 차기 정권에서 사업성을 평가 받아 정당성을 인정받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SK의 이동통신 진출은, ‘특혜’라며 비판하던 김영삼 대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이뤄졌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시절 1이동통신사업자(한국이동통신) 민영화와 함께 재추진됐다. 당시 정부는 “이동통신 사업자 관련 기업의 이해관계가 복잡하다”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에 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요청했는데, 당시 전경련 회장이 최 선대회장이었다. SK그룹은 공정성 시비 재발을 우려해 제2이동통신사업자 사업을 포기하고, 신규 사업권 획득보다 더 막대한 인수자금이 필요했던 한국이동통신 공개 입찰에서 지분 23%를 4721억원에 인수했다.

◇정경 유착 논란의 양면…기업 비호 VS 기업 손목 비틀기

6공 등 권력의 정경 유착 논란은 늘 기업에 도움을 준 것으로만 결론 난 것도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기업 활동에 방해됐거나 ‘손목 비틀기’도 컸다는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문에서도 특혜 논란만 부각했지만 1980년 이후 SK그룹이나 몇몇 그룹은 한때 정권과 친했다는 이유로 이후 검찰 수사 등을 받는 등 적잖은 불이익도 당했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 있었던 일해재단의 600억원 갹출이나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차떼기 사건’ 등은 정치권이 기업의 팔목을 비틀어 거액을 수취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