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약 보름 일정으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작년 22일간 미국 출장에 이어 이례적인 장기 출장으로, 글로벌 IT 기업 경영진과 미국 정계 인사들을 만나 30여 회, 하루 2회 이상의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인텔에 매출 1위를 넘겨주고 2위로 밀린 반도체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고, 인공지능(AI) 기능을 탑재한 ‘AI폰’ 사업에서 주도권을 확대하기 위해 AI, 전장용 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주도하는 미국 기업과의 협력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6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한 뒤 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뉴욕에서 시작해 서부 실리콘밸리까지 둘러볼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주요 고객사와의 협력 강화는 물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출장으로 이달 중순까지 분 단위로 세팅된 빽빽한 일정 30여 건을 소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지난 4일(현지 시각) 뉴욕에서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Verizon)의 한스 베스트베리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차세대 통신 사업과 갤럭시 신제품 판매 관련 협력을 논의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 삼성전자 최초 AI폰으로 출시한 갤럭시 S24 시리즈를 통해 북미 시장에서 애플(아이폰)을 따라잡는 게 목표다. 스마트폰 출하량 기준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미국 점유율은 31%(2위)로 2020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았는데, 여세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날 미팅 후 “모두가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잘 해내고 아무도 못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먼저 해내자”고 출장에 동행한 임직원에게 강조했다고 한다.
이 회장이 지난해에 이어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현지에서 다시 만날지도 큰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납품 테스트를 언제 통과할 수 있는지, 통과한다면 어느 정도 규모 계약을 따낼 수 있는지에 따라 향후 반도체 사업 경쟁력이 크게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작년 4~5월 22일간 미국 출장을 떠나 젠슨 황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등 첨단 ICT 기업 CEO들을 만난 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AI, 바이오, 전장용 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은 미국 기업이 시장을 선도하기 때문에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사업의 존폐를 가른다”며 “반도체 불황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이 회장이 직접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