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K-9 자주포 사격 훈련 중 폭발 사고로 순직한 육군 5포병여단(재직 기준) 이태균 상사의 아내 정주리씨와 아들 용재군, 2018년 수난 구조 활동을 하다 순직한 경기 김포소방서 심문규 소방장의 아내 조샛별씨와 쌍둥이 아들 지호·지안군, 2020년 한강 투신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순직한 한강경찰대 유재국 경위의 아내 이꽃님씨와 아들 이현군, 작년 10월 화재 현장 조사 중 순직한 부천 원미경찰서 박찬준 경위의 아내 조아라씨와 아들 이안군. 이들 네 가족은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사진 스튜디오를 찾았다. 가족과 나라, 국민을 모두 든든하게 지켰던 남편이자, 아빠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이들 가족은 국가보훈부, 한국경제인협회,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전몰·순직 군경 유가족에게 가족사진을 전달하는 ‘우리, 함께 프로젝트’ 제안을 받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들과 눈물도 흘리고 함께 미소 지으며 촬영한 사진작가는 미국, 영국,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김명중(52)씨였다. 2008년부터 전속 사진작가를 맡고 있는 비틀스 멤버인 폴 매카트니뿐 아니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마이클 잭슨, 조니 뎁, 존 말코비치, 비욘세, 방탄소년단(BTS) 같은 유명 인사들을 촬영했던 그가 ‘제복 영웅’의 가족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수퍼스타의 화려한 무대 촬영에 익숙할 것 같은 그는 최근 훨씬 더 긴장해야 하는 장기(長期) 작업을 시작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느라 헌신한 경찰관, 소방관, 군인 등 ‘제복 영웅’의 가족사진을 촬영한다. 그렇지만 구성원 한 명은 함께 촬영할 수 없는 가족사진이다.
김씨는 “가족사진을 찍을 땐 대화를 길게 이어가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요청하는데,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떠올리게 할 수밖에 없어 조심스럽다”며 “그래도 눈물 속에서 미소를 짓는 식구들을 보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져 촬영 때마다 숙연해진다”고 했다.
인물 사진을 주로 찍는 김씨는 국가보훈부의 의뢰를 받고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촬영은 서울 강남구 한 사진 스튜디오에 유가족을 초청해 진행한다. 제복 영웅 총 31명의 가족사진을 촬영할 예정이고, 지금까지 여섯 가족 촬영을 마쳤다.
◇“자긍심 나누는 가족, 감동받아”
김씨는 “촬영하면서 ‘엄마는 강하구나’ ‘유유상종’이라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고 했다. 그는 “떠난 가족에 대한 슬픔은 있지만, ‘아빠’의 헌신에 대한 자긍심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힘내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순직한 분들이 그 직업을 택한 이유는 사명감일 텐데, 가족을 만나보면 그 선한 마음이 느껴진다”며 “‘그런 마음이 이끌려서 이렇게 한 가족이 됐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유명인의 사진은 앨범 홍보, 영화 홍보처럼 목적이 명확하고 멋있고 화려하지만, 깊은 아픔과 인생사까지 담아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이번 촬영은 슬픔도, 아픔도 있지만 그 가운데 어떤 희망과 행복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사진에 담고 있다”고 했다.
김씨가 ‘100일 사진’으로 촬영한 고(故) 박찬준 경위의 가족사진은 특히 어려웠다고 한다. 박 경위는 작년 10월 화재 현장 조사 중 추락해 순직했다. 당시 아내 조아라씨는 임신 5개월이었다. 김씨는 “이제 백일 된 아이를 안고, 촬영하는 동안 계속 눈물을 흘려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촬영이 다 기억에 남지만, 환하게 웃어 보인 고(故) 유재국 경위 가족사진을 찍으며 크게 감명받았다”고 했다. 2020년 유 경위 순직으로 아내 이꽃님씨는 충격을 받아 조산했고, 아들 이현(4)군은 강직성 마비를 앓고 있다. 김씨는 “여러 슬픔이 겹쳤을 텐데도, 너무 씩씩하게 아이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보여줘 감동받았다”고 했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 보며 힘 얻었으면”
김씨는 7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우리, 함께’ 프로젝트 행사에도 참석해 제복 영웅 4가구에 가족사진을 전달했다. 그는 “벽에 걸 수 있는 사진으로 선물하는데, 가족들이 보고 힘이 나고 행복한 사진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꽃님씨는 “솔직히 이런 (가족사진) 기회가 없었는데… 남들 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며 “(아들과) 둘이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키우는 어머니 마음으로 다 같이 힘내서 하늘에 있는 아이 아빠들을 위해 더 멋있게 당당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해외를 오가느라 촬영 일정이 빡빡한 김씨가 국내에서 30번 넘는 촬영을 진행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김씨는 “오늘 행사에서 보훈부 강정애 장관님이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건 작가님 복(福)’이라고 했는데, 100% 동의한다”며 “그동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복 영웅이 헌신한 사연을 뉴스로만 접했는데, 더 많이 알려지고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