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동통신 3사 과점 체제를 깨고자 추진해 온 ‘제4 이동통신사’ 선정이 8번째 무산됐다. 정부는 지난 1월 말 제4 이통용 주파수를 낙찰받은 스테이지엑스의 후보 자격을 취소하겠다고 14일 밝혔다. 약속한 자본금을 납입하지 않는 등 이행 조건을 지키지 않은 점이 이유다. 정부는 “사업자 신뢰성 문제”라고 했지만, 제4 이통 추진 자체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할당하려던 28GHz(기가헤르츠) 대역은 기존 통신 3사조차 “수익성이 없다”며 포기한 주파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 “스테이지엑스의 자격 취소를 결정할 청문 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청문은 행정절차법에 따라 최종 결정 전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자리다.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돼야 결과를 철회할 수 있기 때문에 업계에선 정부의 취소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이번 제4 이통 추진 과정에서 대형 업체에 접촉했지만, 중소·중견기업 3곳만 주파수 경매에 신청했고 이들이 막대한 통신 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불거졌다.
주파수 경매 전 사업자의 재무 능력을 검증할 절차가 없었던 게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19년 통신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법을 바꿔 사업자의 재무 능력을 평가하는 절차를 없앴다. 결국 연매출 440억원의 중소 업체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주파수 낙찰을 받았고, 정부와 약속한 자본금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부는 “앞으로 제도 개선 등을 거쳐 다시 제4 이통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자본금 2000억 약속했는데… 법인 등기부엔 1억원”
스테이지엑스는 지난달 주파수 1차 대금을 납부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이후 정부에서 주파수를 할당하고 기간통신사업자로 등록하면 제4 이통 사업자가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정부는 한 달여간 서류를 검토한 끝에 스테이지엑스의 후보 자격 취소를 결정했다.
정부는 자본금이 신청 당시와 달라진 부분을 문제 삼았다. 스테이지엑스는 지난 1월 주파수 할당 신청서에서 자본금 2050억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달 낸 자본금납입증명서상 금액은 여기에 현저히 미달하는 금액이었다. 당시 스테이지엑스는 언론에 “500억원대 자금을 확보했고 3분기까지 나머지 금액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 납입한 금액은 500억원에도 못 미치는 수백억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마저도 법인등기부등본에는 자본금 1억원으로 기재돼 있어 자본금납입증명서와 일치하지 않는다.
스테이지엑스는 컨소시엄 방식이지만 주요 주주(지분 5% 이상) 6사 중 자본금을 일부라도 낸 업체는 컨소시엄을 주도했던 스테이지파이브 한 곳뿐이었다. 나머지 주주 4곳 중에서도 2곳만 자본금을 납입했다. 과기정통부는 “주요 주주들에 확인해 본 결과, 자본금 납입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스테이지엑스가 주장하는 3분기 납입 완료조차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테이지엑스는 “신청 당시부터 ‘주주들이 주파수 할당 후 자본금을 출자한다’는 내용을 명확히 포함했다”고 반박했다. 할당 시점에 자본금 납입이 완료되지 않는다는 점을 정부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테이지엑스는 “청문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필요한 법적·행정적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고 했다.
◇제4 이통 추진 현실성 있나
정부는 이번 취소 결정이 제4 이통 포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통신 시장 가입자가 포화 상태에 도달했고, 신규 사업자가 할당받을 28㎓ 대역의 사업성도 낮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28㎓ 대역은 도달 거리가 짧고 장애물에 쉽게 가로막혀 전국망을 깔기엔 부적합한 주파수로 평가받는다.
앞서 이번 제4 이통 선정 때도 정부는 쿠팡·KB국민은행·비바리퍼블리카 등 대형 업체 참여를 기대했지만 모두 불참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존 통신 3사 위주로 시장이 너무 견고하다고 보고 참여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통 3사가 성장할 때만 해도 통신 시장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지만, 현재는 각 사 통신 사업 성장률이 1~2%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단통법 폐지, 알뜰폰 활성화 정책이 제4 이통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계속 나온다.
정부가 개선책을 마련한다고 밝혔지만 딜레마는 여전하다. 이번에도 참여하지 않은 대형 업체들이 재공고를 한다고 해서 들어올 것이란 보장이 없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경매 절차와 주파수 대역 등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을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미국 등은 주파수 할당 전 대금 전액을 내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도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제4이동통신(제4이통)
네 번째 이동통신 사업자를 의미한다. 현재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3사 체제다. 이동통신 사업자는 정부로부터 직접 주파수를 할당받아 통신 인프라까지 운영하는 통신 기업으로, 단순히 망(網)을 빌려 가입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뜰폰 업체와는 다르다. 그동안 정부는 가계 소비 지출에서 약 5%에 이르는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알뜰폰 외에도 제4이통 도입을 검토해왔다. 20년 넘게 굳어진 이동통신 3사 체제에 새 사업자를 투입해 통신비 인하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드는 통신 사업을 할 만한 재정적 여력을 갖춘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아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