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상 이사의 충실대상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되, 이사회 결정으로 불이익을 본 주주들의 소송 남발 가능성을 우려해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정책의 일환으로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배임죄 처벌 우려가 커지자 ‘배임죄 폐지’ 카드를 꺼낸 것이다.

배임(背任)이란 타인(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반하는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선 기업인의 경영판단으로 발생한 회사의 재산상 손해에 대해 광범위하게 형사처벌할 수 있어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 등 이슈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연합뉴스

이 원장은 14일 상법 개정 이슈 관련 브리핑을 열고 “우리나라는 배임죄에 대한 형사 처벌 수위가 너무 높다”며 “삼라만상을 모두 처벌 대상으로 삼는 배임죄를 유지할지, 폐지할지 정해야 한다면 폐지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배임죄는 형법상 일반·업무상 배임에 더해 상법(회사법)상 특별배임, 특별경제가중처벌법상(특경가법) 업무상 배임까지 3중으로 규정돼 있다. 특경가법상 업무상 배임죄는 배임 금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나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이 원장은 “배임죄 폐지가 어렵다면 범죄 구성 요건에 사적 목적 추구 등의 문구를 추가해 정말 나쁜 짓을 했을 때로만 한정해야 한다”며 “과거에는 목적이 있는 고의가 있을 때에만 (배임죄 적용을) 한정했는데, 지금은 미필적 고의까지 적용해 범위가 너무 넓다”고 했다. 이 원장은 “형법상의 배임죄를 건드리는 것이 어렵다면 회사법상의 특별배임죄만이라도 폐지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정부가 상법 382조3항의 ‘이사 충실 의무’ 범위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선 “선진국에선 너무 당연한 것”이라며 “이에 대해 이견이 있는 분이 있다면 공개 토론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금감원장 입장에선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명확하다”면서도 “정부의 방향이 아직 정해진 것은 없으며, 논의를 거쳐 올 하반기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