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뉴스1

SK그룹이 삼성그룹보다 3배 이상 많은 219개에 달하는 계열사 숫자를 ‘통제 가능한 범위’ 내로 줄이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동안 무분별한 투자로 외형만 지나치게 커지고,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서 그룹 전반에 거품이 끼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구조 조정 대원칙은 ‘질적 성장’과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 기본으로 돌아간다)’으로 세웠다.

특히 반도체와 AI(인공지능) 이외의 신규 투자는 원점 재검토하고, 핵심 사업과 관련 없는 기존 투자들은 과감히 정리한다. 흐트러진 조직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주 4일제’ ‘유연 근무제’ ‘자율 좌석제’ 등은 폐지·축소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몇몇 계열사 CEO에 대한 인사도 검토 중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SK는 작년 말 취임한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도로 그룹 전반의 군살을 제거하기 위한 큰 그림을 마련했으며, 28~29일 이천SKMS연구소에서 열리는 그룹 경영 전략 회의에서 내용을 공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19개 회사 대폭 정리

최창원 의장은 최근 경영진 회의에서 “219개 계열사를 ‘통제 가능한 범위’로 대폭 줄여야 한다”는 원칙을 전달했다. SK그룹 계열사는 2018년 101개에서 올해 219개가 돼 6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국내 대기업집단 중 가장 많다. 삼성그룹은 63개, 현대차그룹은 70개 정도다. 최 의장은 “이름도 다 알지 못하고, 관리도 안 되는 회사가 이렇게 많은 건 말이 안 된다”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둔 중간지주사 SK스퀘어는 투자회사를 표방하며 설립 2년여 만에 23사 지분을 보유 중이지만, 18개 회사가 손실을 보고 있다. 이에 SK 수뇌부는 “SK하이닉스만 빼고 다 없앤다는 각오로 정리하라”는 방침을 SK스퀘어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모습. SK그룹은 219개의 계열사를 대폭 줄이는 구조 조정을 단행할 계획이다. /장련성 기자

대신 AI와 첨단 반도체 투자는 꼭 필요한 곳에 발 빠르게 할 것을 주문했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수펙스 회의에서 “AI와 반도체에는 에지(edge) 있게 투자하고, 그린·바이오 사업은 콤팩트하게 줄이라”는 지시를 전달했다. 그룹의 핵심 사업을 ‘AI 및 반도체’와 ‘그린 및 바이오’를 양대 축으로 가져가되, 투자는 AI와 반도체 쪽에 집중하고, 그동안 중복 투자가 많았던 그린·바이오 분야는 강한 구조 조정을 하라는 의미다. 재계 관계자는 “향후 배터리·에너지·바이오 분야에서 사업 매각과 통폐합이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 4일제, 유연 근무제 폐지·축소

그동안 “유연함을 넘어 해이해졌다”는 반성에 따라 조직 문화에도 변화를 주기로 했다. SK수펙스, SK(주),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 주요 회사들이 도입했던 주 4일제(격주 또는 월 1회), 유연 근무제, 자율 좌석제, 재택근무 등을 폐지·축소하고 점심 시간은 1시간을 준수한다는 원칙이다. 계열사별 세부 계획은 28~29일 전략 회의에서 발표된다.

먼저 SK그룹 전체 임원들은 주 4일제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직원들의 경우 노사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 임원부터 솔선수범하며 문화를 바꾸기로 했다. 유연근무제는 폐지를 원칙으로 세웠다. 오전 9시 이외 시간 출근이 가능한 유연 근무제는 임신·육아기 직원들만 허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