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일어난 경기 화성 배터리 공장 참사 희생자 23명 중 18명은 외국인이었다. 라오스 국적 여성 1명을 제외한 17명은 모두 중국 동포였다. 이 외국인들 대부분은 그날그날 인력 공급 업체가 보내는 일용직이다 보니 희생자에 대한 정보가 불명확하고, 업무 역시 자주 바뀐 탓에 신원 확인에 애를 먹고 있다.
이번 사고를 두고, 저출산으로 내국인 근로자는 점점 구하기 어려운 데다 힘든 일자리를 외면하는 풍조까지 겹치면서 그 빈 공간을 외국인 근로자로 대신 채워온 우리 산업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낳은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산과 위험 업종 기피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번 배터리 공장 화재 사고와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도 “수십 년간 낮은 출산율로 고통받아 온 한국은 점점 더 현지인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주 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의 성격을 조명하고 있다.
◇내국인 고령화, 신입은 외국인으로 충원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외국인 취업자는 92만3000명으로 처음으로 9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 수(2841만6000명)의 3.2%를 웃도는 숫자다. 상주 외국인 숫자도 1년 전보다 13만명 가까이 늘어난 143만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812명) 중 외국인 근로자는 10.4%(85명)를 차지했다. 2022년 9.7%(874명 중 85명)에서 지난해 10.4%로 올랐다. 위험한 일에 주로 투입되다 보니 산재로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국내에 취업한 외국인 비율의 3배 이상인 것이다. 올해는 1분기(1~3월) 기준으로 외국인 산재 사망자 비율이 11.2%(213명 중 24명)에 달한다.
실제로 위험하고 어려워 내국인들이 가지 않는 주조(주물)·금형·용접 등 뿌리 산업 같은 제조업에서 외국 인력 의존도는 더 높다. 지난해 뿌리 산업 종사자 73만2000명 중 외국인은 7만명을 웃돌며 9.6%를 차지했다. 외국인 비율이 17%를 웃도는 주물 업종은 30대 미만에선 외국인이 내국인보다 1000명 가까이 많았다. 이기중 중소기업중앙회 실장은 “내국인 근로자는 점점 고령화하는데 신입은 외국인 위주로 채워지는 형편”이라며 “특히 대부분 뿌리 산업은 외국인이 없으면 산업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공급 없이는 산업계가 요구하는 인력을 충원할 수 없다 보니 정책적으로도 외국인 인력을 늘리고 있다. 2004년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를 통해 올해 들여오는 비전문 인력(E9) 규모는 16만5000명에 이른다. 2020년만 해도 5만6000명 정도였지만, 조선업 등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요청이 이어지며 4년 만에 3배로 늘어났다. E9 비자 소지자의 체류 기간은 최장 9년 8개월로 늘었고, 올해부터 뿌리 산업 업종뿐 아니라 음식점업, 임업, 광업에도 취직할 수 있게 됐다. 재외 동포(F4) 비자 발급 요건과 취업 범위 역시 꾸준히 완화됐다. 농번기 일손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계절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서 ‘계절 근로자’를 유치하기도 한다.
◇의사소통 어려워… 안전에 위협
외국인 근로자 안전 문제에서 심각한 것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커 안전 이슈에 대한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언어 문제로 안전 교육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일용직일수록 안전 교육이 아예 이뤄지지 않거나 부실하게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일부 제조 업체에서는 안전 교육을 근로계약서 작성 시 15분 정도만 하고 끝내기도 한다.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중국 동포들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젠 20년 넘게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어 구사가 어려운 중국 동포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에서도 희생당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공장 내부 구조를 잘 몰라 피해가 더 컸을 수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번 사고를 단지 위험물 안전 관리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규용 노동연구원 본부장은 “배터리 자체도 위험하기는 하지만 ‘작업자들이 내국인이었다면, 피해 규모가 이 정도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면서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지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내국인만 있는 곳보다 시설 관리를 더 깐깐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