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이 사망한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는 전기나 유류(기름) 등으로 발생하는 화재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란 점에서 충격을 줬다. 특히 휴대폰, 노트북, 태블릿 등 각종 전자 휴대기기들이 확산하면서 배터리가 일상화되고 있고, 배터리 생산은 갈수록 증가하는데 안전 관리 체계는 미흡했다는 것이다. 배터리 화재 때 소화하는 매뉴얼도 없고, 배터리 수만 개가 밀집 보관된 시설인데도 별다른 관리 기준이 없었다.
건전지, 휴대전화부터 전기차, 군용 장비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는 배터리는 리튬, 니켈, 망간, 탄소 등이 주 원료지만 저마다 사용하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재료에 따라 화재 양상과 배출하는 독성 물질도 차이가 난다. 고온·고압 등 원인에 따라 짧은 시간 안에 폭발·화재로 이어지는 ‘열폭주’ 때, 배터리 내부 물질들이 각각 다르게 화학반응을 한다. 이 차이 때문에 화재 진압에 ‘물’을 사용할 수 있는지, 모래를 써야 하는지 등 진화 방식도 차이가 크다. 평소 배터리 특성별 화재 매뉴얼이 없다면 초기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배터리 화재 관련 앞서 지적돼 온 대비책마저 차일피일 늦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감사원은 2020년 국내 금속 화재에 관한 규정 부재를 지적하면서, 해외처럼 금속 화재를 별도 분류해 별도의 소화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배터리 공장 시설 관리도 사각지대에 놓여 미흡했다. 불이 난 아리셀은 배터리 3만5000개가 밀집 보관돼 연쇄 폭발 위험이 컸는데, 관련법에 따라 ‘2급 소방안전관리시설물’로 분류된다. 한 차례 자체 점검을 하고 소방서에 신고만 하면 된다. 스프링클러도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고, 금속 화재 진화에 유효한 마른 모래를 비치해야 할 근거도 없어 현장에는 분말소화기만 있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배터리 제조사가 ‘화재 위험’ 관련해선 더 많은 배터리 정보를 소방 당국에 개방하고, 소방 당국도 배터리 유형별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배터리 특성에 따라 초기에 어떤 물질이 나오는지 알아야 소화 방법과 장비를 적절하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방화협회(NFPA)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배터리 설비를 납품할 때, 열폭주 관련 위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선양국 한양대 교수는 “그동안 배터리 기능과 산업에만 집중됐는데, 안전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며 “배터리 특성에 따른 매뉴얼을 만들어 특히 재난 대응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고, 소방 당국도 배터리 화재의 특성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