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사들이 ‘하늘 위 맛집’ 타이틀을 놓고 ‘기내식 전쟁’을 펼치고 있다. 기존에 기내식 서비스는 대형 항공사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저비용 항공사(LCC)들도 기내식 신메뉴를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LCC가 대형 항공사의 주 영역이던 중장거리 노선 취항을 확대하면서 LCC를 이용한 국제선 탑승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LCC들이 공격적인 기내식 마케팅에 나서자, 대형 항공사들도 음식 트렌드를 반영해 주기적으로 신메뉴를 교체하고 선별된 와인 등을 내놓으면서 LCC와의 격차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내식 영역에서 LCC로 인한 일종의 ‘메기 효과’가 나타난 상황이다.

그래픽=김하경

◇유명 셰프 협업, 고급화 등으로 차별화 경쟁

‘명란크림우동’ ‘카레우동’. 이달 중순 국내 LCC 에어서울이 새로 내놓은 기내식 메뉴다.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유명세를 얻은 정호영 셰프와 협업해 만들었다. 에어서울은 지난해에도 ‘간장계란버터 우동’ ‘고기 마제 우동’ 등 정 셰프의 조리법을 활용한 메뉴를 선보여 월평균 200여 개를 팔았다. 제주항공은 미쉐린 빕 그루망에 선정된 식당인 삼원가든과 협업해 소갈비찜과 떡갈비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 업체와 손잡고 신메뉴를 공동 개발해 출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CJ제일제당과 ‘소고기 버섯죽’ ‘소시지&에그 브런치’ 등을 공동 개발했다. 이스타항공은 패밀리레스토랑 빕스(VIPS)와 ‘떠 먹는 페퍼로니 피자’, BBQ와는 ‘자메이카 치킨’을 출시했다. LCC가 제공하는 기내식 메뉴는 일반적으로 1만~3만원 수준이다.

이에 맞서 대형 항공사들은 3개월 정도 주기로 수요 조사와 음식 트렌드를 분석해 메뉴를 교체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달부터 닭고기김치찜, 쇠고기잡채불고기백반을 새로 내놨다. 차별화를 위해 한우보리죽, 닭죽 등 프리미엄 건강식 메뉴도 도입했다. 계절에 따라 메뉴를 주기적으로 교체하며 차별성을 두기도 한다. 대한항공은 여름 시즌 메뉴로 도토리묵밥을 내놓기도 했다.

LCC의 기내식이 메인 메뉴 위주의 단품 구매인 반면, 대형 항공사는 밑반찬과 샐러드, 디저트, 음료, 주류까지 정식 메뉴로 구성된다는 강점을 이용한 차별화와 고급화에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은 세계적 소믈리에 마크 알베르트와 협업해 신규 와인 50여 종 이상을 서비스하고, 아시아나항공도 구간에 따라 프랑스·칠레·스페인·남아공 등 다양한 산지의 와인을 제공한다.

◇커져가는 기내식 수요

LCC들이 기내식 경쟁에 뛰어든 것은 팬데믹 이후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등 중장거리 노선에 신규 취항하거나 재개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 가운데 LCC를 이용하는 손님도 많아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LCC 국제선 탑승객은 1273만명으로 대형 항공사(1180만명)를 이용한 승객보다 많았다.

중장거리 노선의 경우 비행시간이 4시간에서 8시간 이상까지도 걸린다. 한 LCC 관계자는 “3시간 이상 비행하면 기내식을 먹지 않으려고 계획한 손님들도 기내식을 찾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기내식 판매가 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사전 주문을 할 필요 없이 현장 주문 가능한 기내식도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LCC에서 기내식을 제공받으려면 사전 주문을 해야 한다. 에어부산은 다음 달 1일부터 현장 주문이 가능한 비빔밥을 출시한다. 티웨이항공도 불고기덮밥과 소고기카레라이스 등 탑승 이후 주문 가능한 기내식 메뉴가 있다.

현장 판매 기내식 중 남은 물량은 비행 후 전부 폐기해야 하므로 항공사 입장에서는 남기지 않을 수량을 최대한 정확히 예측하는 게 관건이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노선, 시간, 탑승 인원 등 과거 판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건에 따라 정교하게 수요를 예측해 최대한 손실을 줄이려 노력한다”고 했다. 또 원가가 낮아 폐기 시 손실이 적은 제품을 위주로 현장 판매하기도 한다.

비행 후 재고가 남지 않으려면 LCC 수익 구조상 기내식을 하나라도 더 파는 게 이득이다. 이 때문에 LCC들이 대기업이나 유명인 등과 손잡고 사람들이 더욱 관심 가지고 구매할 수 있는 메뉴들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것이다. 반면 대형 항공사들은 탑승객들이 이미 기내식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LCC만큼 별도의 비용을 들여가며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대형 항공사들이 주도하며 정체돼 있던 기내식 영역에 LCC들이 적극적으로 진입하면서 때아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