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주가가 지난 28일(현지 시각) 전날 대비 19.98% 폭락했다. 사진은 나이키 매장을 지나는 사람들. /로이터 연합뉴스

토요일이던 지난 29일 오후 찾은 경기도 남양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 나이키 매장은 대기 없이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올 1월 13일(토요일) 오후에는 같은 매장에 112팀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5개월 사이에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입장이 바로 가능한 나이키 매장과 달리, 아디다스 매장에는 45팀이 입장을 대기 중이었다.

세계 최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주가가 지난 28일(현지 시각) 전날 대비 19.98% 폭락했다. 지난 27일 나이키는 2024 회계연도 4분기(3~5월) 실적을 발표했는데, 매출이 126억달러(약 17조4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하는 등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4 회계연도 전체로 보면, 매출이 514억달러(약 71조원)로 전년(512억달러)보다 1% 느는 데 그쳤다.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 14년 만에 가장 낮은 연간 매출 증가율이다.

그래픽=이철원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각축장이자 대목으로 꼽히는 올림픽 개막(7월 26일 프랑스 파리)이 코앞인데, 나이키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과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홈페이지와 직영 매장을 통해 판매에 집중하는 전략이 기대만큼 통하지 않은 데다, 혁신의 대명사로 통했던 나이키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제품이 수년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사이 신흥 브랜드들이 나이키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

◇14년 만에 최악의 상황

전 세계 운동화·스니커즈 시장은 코로나 기간 주춤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성장세인데 1980년부터 독주해 온 나이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이키는 별 볼일 없는 육상선수였던 필 나이트가 일본 아식스 제품을 판매하다가 1964년 창업한 회사다. 나이키는 도전을 상징하는 슬로건 ‘저스트 두 잇(Just Do It)’,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등 세계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내세우며 마케팅학 교과서로 불렸다. 여기에 더해 ‘에어 줌’ ‘탄소 섬유 플레이트’ 등 세상을 놀라게 한 기술을 선보이며 경쟁자를 압도했다.

월가에서는 2020년 나이키 CEO에 선임된 존 도나호에게 나이키 부진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 출신인 도나호는 백화점, 스포츠 편집 매장, 이커머스 기업 등 도소매상과 계약을 줄이고 홈페이지, 직매장을 중심으로 판매하는 전략을 짰다. 직접 판매함으로써 더 큰 수익을 얻고, 소비자 데이터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다들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건데, 나이키가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밀어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나이키가 홈페이지와 직매장에서 기록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나 줄었다는 것이다. 여러 제품을 비교해보고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나이키의 전략에 부응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혁신의 대명사가 혁신을 안 했다

나이키는 ‘에어포스 1′ ‘코르테즈’ 등 과거 영광을 이끈 모델을 재탕하고 한정판 출시에 매달리는 등 시장을 놀라게 할 제품 개발에 소홀히 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세계육상선수권(달리기, 허들)에서 17명의 선수가 나이키 신발을 신고 금메달을 땄다. 나머지 브랜드를 신고 뛰어 금메달을 딴 선수(5명)를 압도했다. 세계육상선수권은 스포츠 브랜드의 혁신을 증명하는 자리로 꼽힌다. 하지만 작년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나이키 제품을 신은 선수가 딴 금메달은 10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브랜드의 제품을 신은 선수들이 딴 금메달(12개)보다 적었다. FT는 “2019년 대회에서 나이키가 선보인 탄소 섬유가 이후 대부분의 브랜드에 적용됐다”고 보도했다. 이전의 나이키라면 다른 브랜드가 나이키의 혁신을 따라올 때쯤 또 다른 혁신을 선보였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문가를 인용해 “나이키의 ‘진짜 혁신적인’ 운동화는 내년 봄까지 나오지 않는다”며 “코앞에 다가온 파리 올림픽에서도 상황을 바꿀 제품은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육상대회 열릴 파리 올림픽 경기장 - 지난 2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육상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모습. 이 경기장은 오는 26일부터 열리는 프랑스 파리 올림픽 때 육상 대회 경기장으로 사용된다. /AP 연합뉴스

나이키가 주춤하는 사이 전통의 라이벌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에 더해 호카(HOKA), 온(On) 등의 브랜드가 세를 확장하고 있다. 나이키가 이른바 ‘쿨’한 디자인에 매몰된 사이 다른 브랜드들은 기능과 디자인 혁신에 총력을 기울였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스포츠용품 소매업체 딕스 스포팅 굿즈에서 나이키의 판매 점유율은 지난 1월 39%에서 5월 32%로 하락했다. 반면 호카는 8%에서 13%로, 온은 8%에서 12%로 점유율이 상승했다. CNN은 “나이키가 슬럼프에 빠져있다”며 “기존 스타일보다 편안함, 기능을 중시하는 소비자들로 인해 호카 등이 메인 스트림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