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한 프로그램에선 하나의 상품만 판매한다’는 TV홈쇼핑 업계의 오랜 룰이 깨지고 있다. 이전엔 한 상품을 최대한 오래 노출해야 TV 채널을 옮겨가던 소비자의 눈에 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홈쇼핑 업체들은 방송 전략을 180도 수정했다. 한 번 방송할 때 여러 상품을 최대한 다양하게 드러낸다. 실제로 GS샵은 지난 2분기 150분짜리 방송 1회당 평균 15개의 아이템을 소개했다. CJ온스타일은 평일 오후 1시간짜리 한 방송에서 19개의 식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TV로 홈쇼핑을 보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마련한 ‘생존법’이다. 한 시간짜리 TV 방송보다 1분 미만의 모바일용 쇼츠에 골머리를 앓는 업체도 있다. 홈쇼핑 업계의 오랜 불문율을 깨뜨릴 정도로 모든 업체가 자구책 마련에 목을 매는 실정이다.

국내 홈쇼핑 업계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홈쇼핑 방송을 보던 소비자 상당수가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로 옮겨간 탓이다. 홈쇼핑 방송 주 시청자 층이 고령화되고, 모바일 쇼핑이 활성화한 영향도 크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 중 모바일 거래액이 15조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자, 업계는 주 판매 채널을 TV에서 모바일로 옮기고 있다.

◇밤늦게 하던 간판 프로그램 시간 앞당겨

한때 국내 홈쇼핑 7사(GS샵·CJ온스타일·현대홈쇼핑·롯데홈쇼핑·NS홈쇼핑·홈앤쇼핑·공영쇼핑) 전체 매출은 3조4000억원을 넘었지만, 작년 기준 2조7200억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익도 급감했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홈쇼핑 7개 전체의 작년 영업이익은 3270억원이었다. 전년 5026억원에 비해 34.9%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홈쇼핑 업체가 방송사업자에 지급하는 송출 수수료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작년 홈쇼핑 7개의 매출 대비 송출 수수료 비율은 71.0%를 기록했다.

그래픽=양인성

이커머스 업체와 경쟁하는 홈쇼핑 업계는 더는 TV 매출에 기대지 않고 과거의 ‘방송 문법’을 과감히 바꾸고 있다. GS샵은 12년 만에 처음으로 간판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을 조정했다. 토요일 오후 10시 30분부터 새벽 1시 사이에 하던 ‘쇼미 더 트렌드’를 1시간 앞당겼다. 홈쇼핑 주 이용객들이 고령화하면서 심야 TV 시청이 줄고, 이에 따라 TV홈쇼핑 매출이 집중되는 ‘황금시간대’도 앞당겨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GS샵 관계자는 “유동적이던 메인 프로그램 시간을 황금 시간대로 고정하기 시작한 게 12년 전인데, 이제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이용자 증가로 TV 시청자 자체가 많이 줄었다”며 “심야 매출이 과거보다 감소한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숏폼·웹드라마 만들어 모바일 세대 접근성 높인다

홈쇼핑 업체마다 모바일 쇼핑이 익숙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현대홈쇼핑은 최근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긴 TV 방송을 자동으로 ‘쇼츠’로 바꿔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TV방송 영상을 1분 하이라이트로 자동 편집한 뒤 자체 유튜브 채널 ‘훅티비’에 올리는 것이다. 평균 60분 이상의 방송 영상을 숏폼으로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이내다. TV보다 모바일이 편한 이들을 위해 짧은 영상에 힘을 싣겠다는 전략이다.

롯데홈쇼핑도 지난 3월 방송 ‘쇼파르타 300′을 시작했다. 단 300초 동안 시간제한을 두고 생필품, 지역 특산물 등을 판매한다.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먹방’이나 ‘ASMR’ 등 흥미 요소도 추가했다. CJ온스타일은 3040세대를 노리고 웹드라마도 만들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8분 내외 드라마로 만들고, 홈쇼핑 판매 상품들을 간접광고(PPL)처럼 녹였다.

TV홈쇼핑 영업 부진의 근본적 원인은 TV 시청자 수가 줄어든다는 데에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일상에서 필요한 매체를 묻는 질문에 TV는 27.2%만 그렇다고 답했다. 2014년 43.9%에서 10년 만에 30% 아래로 하락한 것이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서 ‘T커머스 살리기’ TF까지 만들었다. 이커머스의 발달과 TV 시청자 수 감소, 송출 수수료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홈쇼핑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