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명품 시계를 사기 위해 중고 거래 플랫폼에 접속한 A씨. 그는 “매물로 올라온 500만원짜리 시계를 사면서도 ‘혹시 가짜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플랫폼은 판매자에게 중고 물건을 받아 정품 여부를 검수한 뒤 구매자에게 보내주기 때문이다. 정품이라고 한 중고품이 나중에 ‘짝퉁’으로 밝혀지면 거래액의 200%를 플랫폼에서 보상해준다. 이 업체 관계자는 “전문가가 1차 검사를 하고 나서 빅데이터 기반의 8단계 검수 프로세스를 또 거친다”며 “소재 비파괴 검사, 자외선 검사 같은 기술도 쓴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상훈

중고 거래 시장이 똑똑해지고 있다. 동네 벼룩시장을 거쳐 인터넷 카페에서 본격화한 중고 시장은 IT 기술로 ‘신뢰의 옷’을 입은 모바일 앱으로 나아갔다. 여기서 더 나아가 3세대에 접어든 중고 시장은 인공지능(AI)이 적정 가격을 매기고, 가품과 사기꾼을 걸러내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고 거래 활성화를 가로막는 신뢰성 문제를 AI 같은 첨단 기술로 풀어나가면서 거래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내년에 43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에선 중고 의류만을 사고파는 시장 규모만 지난해 59조원을 돌파했다.

◇첨단 기술로 고질병 고친다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는 2022년 12월 서울 성수동에 530평 규모의 ‘정품 검수 센터’를 열고, 정·가품 검수 후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AI 기술을 활용해 사기 거래 유도 패턴을 인식하고 차단하기도 한다. 판매자가 사진 파일로 계좌번호나 카카오톡 아이디를 보내도 이미지 속 텍스트를 읽어내는 광학문자인식(OCR) 기술을 이용해 자동으로 구매 희망자에게 ‘주의’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돈만 받고 사라지는 사기를 막기 위해 구매자의 결제 금액을 보호하고 있다가 구매가 확정된 후에 판매자에게 주는 에스크로(결제 대금 예치) 방식의 시스템도 구축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은 경찰청에서 사기 발생 사례나 패턴, 사기 이력이 있는 이용자 전화번호와 계좌번호 등의 데이터를 받아 AI를 활용해 자동으로 사기 의심 거래에 대해 주의 문구를 띄운다. 중고나라는 카카오톡 챗봇을 통해 판매자의 사기 이력을 간편히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중고 의류 거래 플랫폼 차란은 AI를 통해 중고품의 적정 가격을 책정한다. 전자제품 쇼핑몰 테스트밸리는 안 쓰는 전자제품의 사진을 올리면 AI로 제품을 분석해 판매 금액을 입금해준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AI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중고거래 시장에 필수적인 신뢰를 보완할 수단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중고 거래 3세대로 진화

중고 거래 시장 1세대의 시작은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가 만들어진 2003년이다. 판매자가 게시글로 팔려는 물건의 사진과 가격을 올리면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연락해 직접 만나서 거래하거나 계좌로 송금하고 택배로 보내주는 식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벼룩시장, 바자회를 인터넷 공간에 옮겨놓으면서 중고 거래 시장이 커졌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중고 거래 시장 2세대는 모바일 플랫폼으로 ‘운동장’을 바꿨다. 2011년 번개장터, 2015년 당근마켓이 등장하며 중고 거래가 앱 형태의 모바일 플랫폼으로 옮겨간 것이다. 2세대에선 IT 기술을 활용해 판매자와 구매자의 신뢰도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국내 대기업들도 중고 거래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롯데쇼핑은 2021년 중고나라를 인수했고, 신세계그룹의 벤처캐피털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2022년 번개장터에 투자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약 2조원을 주고 미국 패션 중고 거래 플랫폼 포시마크를 인수했다.

◇중고 거래 열풍은 글로벌 현상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원대에서 작년 30조원을 넘어섰다. 내년에는 시장 규모가 43조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최대 중고 의류 업체 스레드업(thredUp)은 작년 미국 중고 의류 시장 가치가 430억달러(약 59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미국 중고 의류 시장이 2028년까지 매년 평균 11%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일본 최대 중고 거래 플랫폼인 메루카리는 2018년 도쿄증시에 상장했다.

전문가들은 MZ세대가 전 세계에서 중고 거래의 인기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실제 번개장터 이용자 중 MZ세대의 비율은 75%에 달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성세대가 제품의 소유에 더 의미를 둔다면, 젊은 세대는 제품을 사용하는 경험 자체를 중시한다”며 “소득은 제한적인데 새로운 소비 체험을 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이 중고 거래에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