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롯데그룹 ‘2024년 하반기 사장단 회의(VCM·Value Creation Meeting)’가 열린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회의장으로 향하는 신동빈 회장의 표정은 웃음기 없이 무거웠다. 롯데그룹이 처한 현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으로 보였다. 롯데그룹은 최대 사업인 화학 부문이 최근 2년 동안 조 단위 영업 손실을 냈고, 유통 사업은 비용 절감으로 수익성은 개선했지만 외형 성장은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와 각 사업군 총괄 대표 및 계열사 대표 등 경영진 80여 명이 참석해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했다. 최근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 이사로 선임된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도 참석했다.
신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우리 역할임을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며 “미래를 위한 혁신을 지속해 선도 지위를 되찾자”고 말했다. 신 회장은 또 바이오, 전기차 배터리 소재, 전기차 충전 서비스 사업 등 고부가가치 사업을 확대할 것을 주문하고, 재무적으로는 주요 투자를 결정할 때 더욱 면밀하고 철저하게 사업성을 검토하도록 당부했다. 신 회장은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과거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온 역사와 열정이 있다”며 “강력한 실행력을 발휘해 지속 성장하는 그룹을 만드는 데 앞장서 달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는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한다. 롯데그룹은 2010년부터 13년간 재계 순위 5위를 지키다 지난해 포스코에 밀려 6위가 됐고, 올해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최대 매출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은 범용 제품이 중국과 벌이는 경쟁에서 계속 밀려 지난 2년간 적자가 1조원 이상 누적됐다. 지난해 중국에 있는 범용 제품 공장을 모두 매각하고,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이 시장에 중국뿐 아니라 중동 석유 업체까지 가세하면서 실적 개선이 더디다.
유통군 대표 계열사인 롯데쇼핑은 지난해 7년 만의 당기순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매출은 전년 대비 5.9% 줄었다. 마트·백화점을 일부 정리해 수익성 개선에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은 찾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2020년 출범한 이커머스 계열사 롯데온은 올 1분기 224억원 영업 손실을 냈고, 지난 5월에는 권고 사직을 실시했다.
이 때문에 올해 VCM은 위기 극복과 새로운 성장 동력 마련에 초점을 맞췄다. 롯데는 VCM 시작 직전, 경영진이 유망 스타트업의 기술을 체험하고 신규 투자 기회를 모색할 ‘2024 롯데 인베스트먼트 쇼케이스’ 행사를 마련했다. 이 행사에는 인공지능(AI) 기반 콘텐츠 제작, 사물인터넷(IoT) 기반 초소형 점포, 자율주행 로봇, 바이오 등 롯데그룹이 투자하거나 협업 중인 스타트업 16곳이 참여했다. 본회의는 ‘스타트업의 위기 극복 및 재도약 사례’를 주제로 한 외부 강연으로 시작했다. 외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스타트업들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살펴보고 힌트를 얻자는 취지다.
식품·유통·화학군 각 총괄 대표는 ‘선도적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실행력 강화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신 회장이 올해 상반기부터 ‘강력한 실행력’을 강조한 데 따른 것이다. 롯데이노베이트는 AI를 그룹 전반에 활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