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경영 환경으로 대기업의 취업 문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AI(인공지능), 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선 연구·개발(R&D) 인력 위주로 구인난이지만, 일자리 창출 비중이 높은 유통·제조업 불황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5년간 최대 40만명’을 뽑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인력 수급 계획에 고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 초 HR플랫폼 인크루트가 국내 대기업 88곳, 중견기업 134곳, 중소기업 488곳 등 총 71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채용 계획을 확정한 대기업 비율은 2022년 73%에서 2023년 72%, 2024년 67% 등으로 3년 연속 하락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2022년 말부터 글로벌 경기 침체가 본격화했기 때문에 인력 채용 계획을 조정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규 채용 대신 인력 감축이 이어지는 곳도 많다. 작년 적자를 기록한 이마트가 지난 3월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이커머스 업계에서도 11번가, SSG닷컴, 롯데온에서 희망퇴직이 이어졌다. 철강·배터리·정유 업종은 대규모 장치 산업이라 인력 규모는 크지 않지만, 불황으로 신규 채용도 어려운 상황이다. 주요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확대하고, 국내에선 자동화 시스템 도입이 빠르게 늘어난 점도 채용 한파에 영향을 미쳤다.
공개 채용보단 신사업 인력을 충원하는 수시·경력 채용을 선호하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구직자로선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구직 기간이 길어지게 된다. 지난 3월 한국경제인협회의 ‘상반기 대기업 채용동향·인식 조사’에 따르면, 작년 대졸 신규 입사자 4명 중 1명(25.7%)은 경력을 가지고 신입으로 지원한 ‘중고 신입’이었다. 중고 신입 비율은 2022년(22.1%)보다 3.6%포인트나 늘었다. 한경협 관계자는 “고금리, 고물가 장기화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신입 사원 교육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업무에 즉시 투입하여 성과를 낼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선호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