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기업인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환불 지연’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진 가운데, 25일 서울 삼성동 위메프 본사에 피해자 수백 명이 해결책을 요구하며 몰려온 모습. 류화현 위메프 대표는 이날 “1순위로 소비자, 2순위로 영세 소상공인의 피해가 없게 하겠다”고 했다. /전기병 기자

온라인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인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자에게 제때 정산을 해주지 못하면서 발생한 사태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판매자들에 대한 정산도, 소비자들에 대한 환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다 일부 환불, 정산조차 원칙 없이 진행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위메프 측이 25일 “소비자 환불이라도 먼저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실제 현장에서 환불은 지지부진했다. 이날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합동조사반을 꾸려 티몬과 위메프에 대한 긴급 현장 조사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도 피해 중소기업 사례 취합에 착수했다.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한 업체는 6만개에 달한다. 이 업체들의 대부분은 영세 판매자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를 겨우 버텼는데, 이번 사태로 영세한 업체들의 줄도산이 벌어질 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티몬과 위메프의 미정산액이 1700억원이라고 밝혔다. 뒤늦게 언론을 통해 이번 사태를 접한 사람들이 늘면서 23~24일 양일간 1372 소비자상담센터를 통해 접수된 티몬, 위메프 관련 민원은 2000건을 돌파했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위메프 본사 앞에는 7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커머스 기업인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자에게 제때 정산을 해주지 못한 사태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면서 환불과 정산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현장에는 여름 휴가를 위해 여행 상품을 결제한 사람이 특히 많았다. 한모(43)씨는 “다음 주 월요일(29일) 가기로 한 호텔 예약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환불이 안 돼서 무작정 찾아왔다”고 말했다. 위메프는 이날 수기로 환불 절차를 진행했지만, 피해자들이 몰리면서 안전사고를 우려해 오전 10시 30분부터 현장 접수를 중단하고 QR코드를 통한 온라인 접수를 안내했다. 티몬 피해자들은 직원들이 재택 근무에 들어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티몬 사옥에 진입해 항의를 했다.

그래픽=양인성

티몬에서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A(39)씨는 지난 19일 입금됐어야 할 대금 7억원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 최대 두 달이 걸리는 정산 대금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티몬과 제휴된 은행에서 먼저 정산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터졌다. 그는 “은행에서 당장 10억원을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이미 판매를 마쳐 8~9월에 들어와야 할 대금까지 합치면 수십억 원이 물려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 같은 사람에게 티몬과 위메프 등 이커머스 플랫폼은 생명줄이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 입점하거나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어 판매에 나설 경쟁력과 힘이 없다. 티몬과 위메프의 6만여 판매사 대부분은 A씨처럼 수수료, 긴 정산 주기를 감수하고 입점을 택했다. 티몬에서 물건을 파는 한 업체 사장은 “티몬 같은 큰 기업이 판매 대금을 떼어먹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는데, 이번에 그 믿음이 깨져버렸다”고 말했다.

특히 거래 금액과 이커머스 업체에서 판매되는 비중이 큰 여행, 가전 등의 판매자들이 심각한 자금 상황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100만원짜리 상품을 팔면 여행사는 1만원을 가져가는 구조”라며 “이커머스 업체가 제때 정산을 해주지 않으면 소형 여행사는 곧장 자금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한 여행사는 30여 사로 이 중 5~6곳을 제외한 대부분 업체가 항공사, 호텔 위약금을 지불하고 나면 사업을 이어갈 수 없는 영세 여행사다.

25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에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모습. /조인원 기자

◇소비자도 복불복

소비자들은 티몬과 위메프의 대응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판매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복불복’이다. 자금 여력이 있는 판매사는 손해를 감수하고 소비자들을 구제하겠다고 나섰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소비자를 신경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SPC그룹은 티몬과 위메프에서 판매한 모바일 상품권에 대해 전액 환불 가능하도록 했다. 시몬스는 티몬에서 소비자가 결제한 제품을 문제없이 배송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시몬스가 오는 8~9월 티몬 측으로부터 지급받아야 하는 정산 금액은 1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11번가는 소비자가 위메프에서 구매한 기프티콘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참좋은여행 등 여행사들은 티몬과 위메프에 대한 계약 해지에 나섰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여행사가 소비자들에게 “다시 여행사에 결제해야 여행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야놀자는 29일부터 예약한 숙박 상품에 대해 일괄 사용 불가 처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야놀자는 소비자들에게 “취소 환불 절차는 티몬/위메프 고객센터를 통하여 진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공지했다. 티몬·위메프 여행 예약 피해자가 모인 채팅방에는 15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다.

◇또 다른 뇌관 상품권

티몬, 위메프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상품권 시장도 혼돈에 빠지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는 업계에서 유난히 상품권 할인 판매를 많이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티몬과 위메프는 해피머니 상품권 5만원권을 4만6250원에, 컬쳐랜드 상품권 5만원권을 4만6400원에 각각 판매했다. 사실상 ‘깡’ 시장 역할을 한 것이다.

상품권 시장은 소비자가 구입한 상품권을 상품권 제휴사에서 쓰면 제휴사가 상품권 발행업체에 다시 돈을 청구하는 구조다. 티몬과 위메프가 상품권 발행업체에 판매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상품권 제휴사들이 상품권 발행업체의 자금난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상품권 사용을 막은 것이다. 상품권 제휴사 관계자는 “사태가 정상화될 때까지 티몬과 위메프에서 판매가 많았던 상품권의 사용을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