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정부가 추진하는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방안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상장 계획이 있는 비상장사 세 곳 중 하나 이상이 상장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현행법에서 기업의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개정안에서는 대상을 넓혀 ‘주주’로까지 확장한다.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를 위해 ‘이사 충실 의무 확대’를 포함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5~19일 국내 비상장기업 237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장 계획이 있다고 밝힌 기업 가운데 36.2%는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가 확대되면 ‘상장 계획을 재검토’(34.5%)하거나 ‘철회’(1.7%)하겠다고 밝혔다. 상장 계획이 있다고 밝힌 기업은 전체 237개사 중 46.4.%였다.

국내 비상장기업의 73%는 현재도 상장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주주소송 위험, 공시의무 부담 등을 들었다. 상법 개정 시 국내 비상장사 67.9%는 지금보다 상장을 더 꺼리게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및 배임 등 이사의 책임 가중’(70.8%)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주주 간 이견 발생 시 의사결정 지연’(40.4%), ‘경영 보수화 우려’(37.3%), ‘지배구조 등 분쟁 가능성 확대’(28.0%), ‘이익상충시 주주이익에 기반한 의사결정 확대’(24.2%), ‘추상적 규정으로 위법성 사전판단 어려움’(16.1%) 등도 이유로 제시했다.

송승혁 대한상의 금융산업팀장은 “비상장사들도 상장사와 마찬가지로 충실 의무 확대 시 이사의 책임 가중 등을 우려하고 있다”며 “기업이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시 (소송리스크 등) 문제로 상장을 꺼린다면 밸류업의 취지에 역행해 오히려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를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상장사에만 적용해 비상장사의 부담을 줄이자는 논의도 나온다. 하지만 이에 대해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자본시장법은 상법·민법 등 민사법에 기반하고 있다”며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을 개정한다 해도 자본다수결 원칙과 법인 제도 등 우리 민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 소지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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