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이번 주말 프랑스 파리에서 식사 자리를 가질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이 회장과 머스크는 몇 차례 만났지만, 정 회장과 머스크의 만남은 처음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 전기차 시장 1위, 2위인 테슬라, 현대차 최고경영자 간 만남은 이례적이어서 회동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테슬라 세 회사는 차량용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 등에서 협력을 통한 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다.
두세 살 차인 세 사람의 만남을 주도한 건 이 회장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재계 창업 1~2대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3대로 오며 상호 교류와 협력이 필수가 됐다는 분석이다.
복수의 재계 고위 인사는 “파리 올림픽 기간 프랑스를 방문한 세 사람이 차세대 기술 개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앞으로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 일론 머스크 CEO와 가까운 이재용 회장이 만남을 제안했고, 두 사람은 흔쾌히 승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과 머스크는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지난해 5월 이 회장의 미국 출장 때 머스크가 실리콘밸리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 자율주행 구현의 핵심 역할을 하는 반도체칩의 공급사다. 둘은 지난 25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최한 기업인 오찬 자리에도 각각 참석했다. 대한양궁협회장 자격으로 프랑스를 방문 중인 정 회장은 이날 오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세 사람의 만남은 글로벌 무대에서 교류가 활발해진 최근 산업계 분위기를 대변한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창업 1~2대는 각자의 분야를 공고히 하거나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 탓에 상대적으로 교류가 적었지만, 3대로 넘어오며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자’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며 “특히 IT와 제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기업들의 전방위적 협력이 필수가 된 것도 이런 만남들을 가능케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 삼성전자, 현대차, 테슬라 세 회사는 차량용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전장(電裝) 분야 등에서 협력을 통한 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다. 과거 대형 반도체 업체가 참여를 꺼렸던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전기차와 자율주행 개념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의 개념이 이동 수단에서 바퀴 달린 컴퓨터로 진화하면서 어제의 경쟁사가 오늘의 협력사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세 회사의 협력 여부에 따라 부품 공급 등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여지도 있다.
세 사람은 연배가 비슷하다. 두세 살 차이로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다. 이재용 회장의 경우 굵직한 CEO들과의 공개 만남이 잦은 편인 반면, 정 회장은 CEO들과의 만남이 공개된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다. 머스크는 X(구 트위터)를 통한 독설로 유명하지만 기업인들과의 만남에서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현대차와 경쟁 관계지만, X에 “현대차는 잘하고 있다”며 공개 칭찬한 적도 있다.
이들은 차세대 핵심 산업인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해서도 의견을 나눌 전망이다. 테슬라가 양산이 용이해 ‘게임 체인저’라 불리는 ‘4680′(지름 46㎜ 길이 80㎜) 원통형 배터리 개발을 주도하는 가운데, 삼성SDI가 지름 46㎜의 원통형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었고, 현대차도 배터리 설계 분야에 진출한 상황이다. 완성차 업체까지 배터리 분야에 관심을 두는 건 전기차 가격의 30~4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을 지금처럼 배터리 업체에만 전적으로 의존해 끌려 다닐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배터리 설계 외 구체적 생산 계획까지 내놓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정 회장과 머스크의 의견 교류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배터리 분야도 반도체처럼 ‘설계’와 ‘생산’을 분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완성차 업체가 설계 전문 회사인 ‘팹리스’ 역할을 하고,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역할은 배터리 업체가 맡는 방식이 보편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