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국

여행 상품과 상품권 환불 문제가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일반 상품를 구매한 경우와 달리 환불 등 소비자 구제가 지지부진한 데다가 두 업체가 국내 이커머스 중 유난히 여행 상품과 상품권 판매에 집중한 탓에 피해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일부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는 “환불할 의무가 없다”며 여행 상품과 상품권 구매자에 대한 환불을 보류한 상태다. 티메프에서 상품을 판매한 여행사와 상품권 업체도 자신은 환불 주체가 아니라며 PG사와 함께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고 티메프에서 할인 상품권과 여행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결제 금액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불안해하고 있다.

◇PG사 “왜 우리가 환불해줘야 하느냐”

티메프 사태가 터지자 금융 당국은 환불할 여력이 없는 티메프를 대신해 PG사들이 소비자에게 먼저 쇼핑 금액을 돌려주도록 유도했다. 실제로 11개 PG사와 신용카드사는 일반 물품을 주문한 소비자에겐 환불을 진행하고 있다. 일주일 내로 환불 절차가 끝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PG사가 환불에 나선 건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 때문이다. 이 법은 물품의 판매나 서비스 제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 신용카드 이용자인 소비자가 환불을 요구하면 PG사가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PG사들은 “일반 상품과 달리 여행 상품과 상품권은 환불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PG사들은 여행이 시작되지 않거나, 여행사가 대금 정산을 받지 못했더라도 여행 확정과 함께 여행사와 소비자 간 계약이 성립됐다고 주장한다. 상품권의 경우에도 핀(PIN) 번호가 발행돼 소비자에게 전달됐으면 상품권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판매 절차가 끝났기 때문에 PG사가 아닌 상품권 발행사가 환불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여행사와 상품권 업체는 티메프로부터 정산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환불을 해줄 수 없다고 맞선다. 티메프가 집중적으로 판매한 해피머니 상품권의 발행사는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PG사, 여행사, 상품권 업체 모두 자신은 환불할 수 없다며 책임을 떠밀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이미 돈을 냈는데 여행길이 막히고, 구입한 상품권은 휴지 조각이 됐는데 환불받을 길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픽=김현국

◇피해 구제도 복불복

소비자 피해 구제는 한마디로 ‘복불복’이다. 토스페이로 티몬에서 300여 만원짜리 사이판 여행 상품을 구매한 안모(40)씨는 “가족 여행을 잡아 놓은 것이라 여행사 요구대로 기존 금액만큼 추가로 결제를 했다”며 “티몬을 통해 환불 요청을 하고 기대 없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5일 뒤 돌려받았다”고 말했다. 김모(34)씨는 티몬에서 10월 떠나는 150만원짜리 베트남 여행 패키지를 구매했지만, 환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결제한 신용카드 회사에선 ‘기다려달라’는 말만 하고, PG사인 한국정보통신(KICC)도 감감 무소식”이라고 했다.

현재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페이 같은 일부 PG사에서는 티메프에서 여행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환불을 해주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PG사는 기업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일단 환불 조치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여신금융협회는 티메프의 여행 상품과 상품권에 대해 PG사가 법적으로 환불 의무가 있는지 법리 검토를 하고 있다. 금융 당국도 PG사의 주장이 타당한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4일 오후 1시 현재 티메프에서 여행·숙박·항공권 환불을 못 받은 피해 고객의 집단 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4063건에 달했다.

◇상품권, 여행 상품 판매에 열 올린 티메프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티메프에서 판매된 상품권과 여행 상품의 피해 규모가 2000억원을 넘어설 것이란 말이 나온다. 티메프는 이커머스 업계에서 유난히 상품권과 여행 상품 판매에 열을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상품권과 여행 상품은 단가가 높아 현금 당기기가 좋고, 상품권을 사용하거나 여행이 개시되기 전까지 판매 대금을 주지 않아도 돼 자금을 굴리기 좋다고 본 것 같다”며 “티메프는 업계에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할인된 가격에 상품권과 여행상품을 팔아왔다”고 말했다.

티몬은 이번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도 홍콩, 마카오 관광청 등과 협업한 할인 상품 등을 잇따라 판매하는 등 프로모션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이번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달 6일 하루에만 티메프의 카드 결제액은 897억1000만원으로 추산됐다. 지난 6월 17~30일 일평균 결제 금액(167억원)의 5배가 넘는다.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사·Payment Gateway)

신용카드사와 직접 계약하지 못하는 영세 온라인 쇼핑몰 대신 결제 업무를 대신해주는 회사. 소비자가 신용카드로 상품을 결제하면 PG사가 티몬·위메프 등 가맹점에 대금을 전달한다. 금융 당국은 티몬과 위메프가 환불을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PG사에 “우선 소비자 환불을 시행하라”고 했다. 이에 PG업계는 여행 상품과 상품권의 경우 환불 책임이 여행사와 상품권 발행업체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