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업체 12사는 지난 3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모여 비상 대책 회의를 열고 있다. 가입자와 매출, 영업이익이 매년 큰 폭으로 줄면서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의를 통해 정부에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 시장 변화를 정책에 반영해 달라고 건의하고, 지역 관광 사업 등 업체들이 추가로 수익을 낼 만한 사업이 있을지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다 같이 죽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5년 국내 유료 방송 시대를 연 케이블TV가 갈수록 수렁에 빠져들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에 밀려 음악·골프·낚시 등 주요 케이블TV 채널 수요가 줄고, OTT에 시장을 빼앗기며 가입자 감소세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요 수익원이던 홈쇼핑 업체는 쿠팡 같은 이커머스와의 싸움 속에 더는 TV 방송으론 매출을 못 올린다고 보고 아예 발을 빼려는 상황이다.

그래픽=양진경

◇가입자 둔화 속 삼중고

케이블TV는 2000년대 후반만 해도 ‘황금 알 낳는 거위’로 평가받았다. 2009년 케이블TV 업체 티브로드가 또 다른 케이블TV 업체인 큐릭스홀딩스를 인수할 당시 가입자 1인당 가치가 100만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통신 3사가 IPTV(인터넷TV) 서비스를 시작하고 TV·인터넷·모바일 묶음 판매에 나서자 케이블TV 가입자는 2009년 1514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본격적인 하락 추세로 접어들어 지난해 하반기 1254만명까지 떨어졌다.

추락의 1단계는 음악 채널, 골프 채널, 낚시 채널 등의 영향력이 감소한 것이다. 케이블TV 가입자는 지상파 TV에서 쉽게 못 보는 특화 채널을 보려고 가입한 경우도 많았는데 이들이 유튜브 등으로 대거 옮겨 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취미 관련 유튜브 채널이 우후죽순 생긴 데다 기존 방송들도 자사 프로그램을 하이라이트로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케이블TV가 매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2단계는 넷플릭스·티빙 같은 OTT의 성장으로 유료 방송 ‘코드커팅(해지)’ 현상을 가속화한 것이다. 특히 부가 서비스로 수익을 안겨주던 유료 VOD 매출을 갉아먹고 있는 중이다. 케이블TV의 유료 VOD 매출은 2019년 1437억원에서 작년 673억원으로 4년 새 절반 넘게 급감했다. OTT에서 수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되면서 굳이 추가로 돈을 내고 VOD를 볼 필요가 사라진 탓이다. 이용자가 급감하자 일부 케이블TV 업체는 비용 부담이 큰 지상파 무료 VOD 서비스를 없애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홈쇼핑 채널의 몰락도 케이블TV엔 치명타였다. 이 때문에 주요 수익원 중 하나인 홈쇼핑 업체와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쿠팡 등 등장으로 쇼핑 흐름이 TV에서 모바일로 완전히 넘어간 상황에서 홈쇼핑 업체들은 막대한 수수료를 케이블TV에 지불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홈쇼핑 업체 관계자는 “홈쇼핑도 요즘엔 TV가 아닌 스마트폰을 활용한 라이브커머스 사업에 더 주력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사업으로 눈 돌리는 케이블TV

케이블TV 업계가 좀처럼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하자 각 업체도 가입자 확대 대신 각종 신사업 발굴로 눈을 돌리고 있다. LG헬로비전은 지난달 인천에 7230㎡(약 2200평) 규모 복합문화공간을 열며 문화 사업에 진출했다. 여기에 지역 소상공인 상품 판매, 디지털 교육 플랫폼 사업 등 총 3개의 지역 기반 신사업을 키운다는 전략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역에서 오래 사업을 해온 만큼 기존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고, 반대로 신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가 살아나면 다시 케이블TV 가입자 기반이 넓어지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블TV 업체 딜라이브는 패스트(FAST·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딜라이브는 별도 기기를 달면 일반 TV도 스마트TV처럼 OTT를 바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자사 패스트도 함께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회사 측은 “현재 애니메이션 ‘라바’, 다큐 ‘세계테마기행’ 등 채널 20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내년까지 100개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