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이어지며 전력 수요가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2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한국전력공사 경기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9호 태풍 ‘종다리’가 북상하며 한반도에 ‘열 폭탄’이 상륙하자 20일 전력 수요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19일 역대 최대 전력 수요를 기록한 지 하루 만이다. 예년이면 더위가 한풀 꺾이는 시점에 역대 기록을 잇달아 경신하면서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AI(인공지능) 확산과 이상 고온의 영향으로, 전력 수요가 90GW(기가와트) 이상 고공행진을 하는 기간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자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례적으로 8월 하순에 기록 경신

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오후 5시 평균 최대 전력 수요가 97.1GW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하루 만에 경신했다고 밝혔다. 전력 수요는 앞서 전날 오후 5시(94.7GW)에 지난 13일 기록(94.6GW)을 돌파한 데 이어 1시간 뒤인 6시에 95.6GW를 나타내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날은 오전부터 전날보다 4~5GW 이상 높은 수요를 유지하며 이미 오후 4시에 96.5GW로 전날 경신한 기록을 깼고, 한 시간 만에 기록을 다시 갈아치우며 역대 최대를 찍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이날 나타낸 97.1GW는 여름철 전력 성수기에 앞서 정부가 예상한 올 여름철 최대치의 상한에 육박하는 규모다. 지난 6월 21일 산업부는 올 여름철 최대 전력 수요가 여름 휴가철이 끝난 8월 둘째 주에 92.3GW에서 97.2GW 사이를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8월 20일은 지난 10년 사이 여름철 최대 전력 수요 기록일 중 코로나로 전력 수요가 급감했던 2020년(8월 26일)에 이어 둘째로 늦은 시점이다. 기업체 휴가가 끝난 12~13일이 전력 수요 피크의 마지노선이라는 상식이 깨진 것이다. 예년 같으면 15일 이후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잇달아 발생한 태풍이 비구름과 함께 한반도 상공의 열기를 밀어내면서 전력 수요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엔 태풍 ‘종다리’가 남쪽의 열기와 수증기를 수도권으로 끌고 올라오며 서울 등 수도권 냉방 수요를 급증시켰다. 특히 전체 발전량의 10%를 웃돌며 낮 시간 전력 공급원 역할을 해온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가 흐린 날씨에 제대로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면서 기존 발전 설비에 몰리는 전력 수요는 더 커졌다. 수도권에 ‘열 폭탄’을 던진 ‘종다리’는 태양광발전소가 몰린 호남권 등에 구름대를 형성하며 태양광 발전량을 줄였다.

이날을 포함해 역대 최대 전력 수요를 기록한 10번 중 6번은 이달에 몰렸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첨단산업이 급성장하고, 전기차 등의 보급으로 우리 생활 곳곳에서 전기화(化)가 이뤄지는 가운데 이상고온까지 겹치며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수요 급증 전망…대책 시급

대비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AI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다”며 “점점 더 수급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8월 하순까지 전력 수요가 폭등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발전소 정비 등과 관련한 검토에 대한 요구도 나온다. 2011년 가을철 발전소 계획 예방 정비가 몰린 시기에 늦더위가 급습하며 일어났던 9·15 순환 정전과 같은 사고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이대로 가면 9월에도 더위가 이어지면서 전력 수요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며 “발전소들의 정비 일정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