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원전 수주로 주목받는 24조원 규모의 체코 원전 수출이 미국 웨스팅하우스 변수에 발목을 잡혔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세계 최초로 가압수형 경수로를 상업화한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원전 원천 기술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이에 한국수력원자력 등은 “기술 자립화를 한 만큼 수출에 문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웨스팅 하우스는 왜 이토록 반발하는 것일까.
본지는 전문가들을 통해 ‘웨스팅하우스 사태의 내막’을 분석해봤다. 우선 웨스팅하우스는 캐나다 사모펀드와 우라늄 업체가 지분을 양분하고 있었다. 눈앞의 수익성을 우선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웨스팅하우스의 경쟁력이 크게 약해진 가운데 세계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는 한국 원전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한·미 동맹에만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기엔 상황이 휠씬 복잡하다는 진단이 나오는 대목이다.
◇캐나다 사모펀드가 주인
25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현재 웨스팅하우스의 최대 주주는 캐나다 사모펀드인 브룩필드다. 브룩필드는 2018년 경영난에 처한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면서 대주주에 올랐다. 2022년 지분 49%를 캐나다 우라늄 업체인 카메코에 넘겼지만, 51%는 브룩필드가 갖고 있다.
2010년대 후반부터 계속된 웨스팅하우스와 한수원 간 분쟁을 두고 이런 지배 구조 변경이 가장 큰 배경이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와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많은 원전을 건설하면서 기술자들 사이에 유대감도 강하고, 기술 협력도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며 “하지만 사모펀드가 최대 주주가 되면서 한국에 기술 침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전했다. 첨단 기술인 원전 분야 기업이라는 점에서 에너지부 등 미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만, 재무적 측면에서는 대주주의 입김이 강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프랑스 출신으로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전 당시 알스톰 원전 부문장을 지낸 패트릭 프래그먼 CEO(최고경영자)가 2019년 부임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껍데기만 남은 웨스팅하우스
국내 원전 업계가 연달아 원전 수주전에서 웨스팅하우스를 압도하자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웨스팅하우스는 여전히 원천 기술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만 1979년 이후 30여 년간 자국 내 원전 건설이 중단돼 신규 원전 공급 능력이 크게 약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성기인 1970년대 후반 5만5000명에 이르던 직원은 이제 당시의 6분의 1에 못 미치는 90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주요 사업 영역도 운영·관리로 축소됐다. 이번 체코 수주전에 한국, 프랑스와 경쟁하며 참가했다가 올 1월 일찌감치 탈락하기도 했다. 문주현 단국대 교수는 “우리는 한수원이 비용·기간 등을 총괄 관리할 수 있지만, 웨스팅하우스는 그런 역량이 부족하다”며 “기술 인력도 고령화되며 위기감이 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동 등 신시장 단속
웨스팅하우스의 ‘강공’엔 세계 원전 설비 규모가 2050년까지 2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중동, 유럽 등 원전 신시장에서 우리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이미 UAE에서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한 우리나라가 체코를 시작으로 유럽까지 석권하는 결과를 우려한다는 것이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일을 쉽게 넘어가면 앞으로 중동 등 신시장 개척 때도 제대로 몫을 챙기기 어렵다는 웨스팅하우스의 셈법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