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지난달 한국수력원자력이 수주한 24조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을 두고 체코 반독점 당국에 ‘한국이 원천기술을 도용했다’는 취지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K원전 발목 잡기의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 동시에 이번 사안을 미국-체코-한국이 얽힌 국제적인 분쟁으로 끌어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에 우리 원전 당국은 이날 “(웨스팅하우스 측이)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라는 입장만 내놓고, 추가 반박을 아끼는 모습이다. 미국 정부와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웨스팅하우스 측의 공세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 웨스팅하우스는 26일(현지 시각) “체코전력공사(CEZ)가 한수원을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체코 반독점 당국에 진정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와 비슷한 체코 경쟁보호국은 경쟁 촉진에 더해 정부 공공 조달 사업에 대한 감독과 감시 기능도 갖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이어 “한수원의 원자로 설계 기술은 웨스팅하우스가 특허권을 보유한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며 “한수원은 원천 기술을 소유하고 있지 않고, 웨스팅하우스 허락 없이 기술을 CEZ와 체코 현지 업체 등 제3자가 사용하게 할 권리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은 웨스팅하우스가 이미 2022년 10월 미국 연방지방법원에 한수원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APR1400(한국형 원전)에 우리 기술이 적용됐으니 한국이 체코와 폴란드 등에 수출하려면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이런 움직임은 예상했던 수순”이라며 “체코 사업에 영향이 없도록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CEZ도 “입찰에서 떨어진 참가자는 우선협상자 선정 과정에 이의 제기할 수 없다”며 일단 우리 손을 들어주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웨스팅하우스는 “체코가 한국에서 원전을 도입하면 미국 기술을 불법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체코와 미국에서 창출할 수 있는 수만 개의 청정에너지 일자리를 한국으로 보내게 된다”며 “그 일자리에는 웨스팅하우스의 본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 일자리 1만5000개도 포함된다”고도 했다. 실업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미국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이어 “2025년 하반기 이전에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내년 3월로 예정된 한수원과 체코 사이의 본계약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웨스팅하우스가 지난 1월 수주전에서 일찌감치 탈락하고, 프랑스 EDF(프랑스전력공사)와 한수원의 2파전으로 진행된 상황에서 결국엔 합의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 신규 원전을 전통의 라이벌인 프랑스가 따내는 결과 또한 웨스팅하우스가 바라는 그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도 함께 세계 원전 시장을 공략하자고 제안하는 한국의 발목을 잡았다가 글로벌 시장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