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지난 23일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아미티 대학. 인도 학생들이 캠퍼스에 마련된 농심 부스에서 ‘신라면 레드 수퍼 스파이시’를 시식했다. 농심의 수출용 제품 가운데 가장 매운 이 라면을 맛본 인도 학생들 83%는 설문에서 “맵기가 좋다”고 답했다. 농심은 지난 2월에도 3만명이 찾는 이 대학 축제에 부스를 차리고, 경품을 주며 시식 행사를 했다.

국내 라면 기업들이 한 해 87억개 가까이 되는 라면을 소비하는 인도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른바 K라면이 중국, 미국, 일본, 유럽 등에 진출한 데 이어 미개척 시장인 인도를 유혹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인도는 글로벌 기업 네슬레 등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K라면은 K팝, K드라마 등 한류를 등에 업고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 4년 사이 인도 라면 수출액이 200% 넘게 성장하는 등 ‘카레의 민족’인 인도인들이 한국 라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한류 타고 진입 장벽 넘는다

한국 라면 기업이 인도 시장의 문을 두드린 건 역사가 길지 않다. 삼양식품은 2016년, 농심은 2017년 진출했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높았다. 글로벌 식품 기업 네슬레가 사실상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슬레는 1983년 매기(Maggi)라는 브랜드를 인도에 출시해 인도 라면 시장 60%를 점유하고 있다. 이 밖에 인도 대기업 ITC의 선피스트, 일본 닛신,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 크노르 등이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최근 이 시장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인도 영자지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지난 4월 “인도에서 K팝과 K드라마 인기가 올라가면서 한국 라면 소비량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네슬레 매기는 작년 11월 한국 바비큐 맛을 표방한 신제품을 내놓으며, 포장지에는 한글로 ‘라면’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보면 2019년 370만달러(약 49억원)였던 인도 라면 수출액은 지난해 1128만달러(약 150억원)가 돼 4년 만에 3배로 성장했다. 농심은 인도에서 2020년부터 작년까지 4년간 연평균 63% 성장했다. 올해는 인도에서 850만달러(약 113억원)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삼양식품은 작년 10월 인도 대기업 릴라이언스 산하 고급 대형 마트에 입점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올해 200개 이상 매장에 입점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올해 작년 대비 45% 성장한 150억원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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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라면 시장 된 인도

인도는 독특한 식문화를 갖고 있다. 점심 식사를 오후 12시 전후 하는 것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저녁 식사는 오후 8~9시나 돼야 한다. 점심과 저녁 식사 사이에 시간이 많아 라면, 비스킷 등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다. 세계인스턴트누들협회(WINA)에 따르면 인도는 작년 한 해 동안 86억8000만개의 라면을 소비했다. 중국, 인도네시아에 이어 3위다. 한국(40억4000만개)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특히 인도는 어느 나라보다 라면 시장 성장세가 가파르다. 도시화로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다, 인구가 늘고 있는 젊은 층이 간식으로 라면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2022년 세계 라면 소비 4위였지만, 작년 한 해 동안 라면 소비가 11억개나 늘었다. 인도 시장조사 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는 인도 라면 시장이 작년 약 2조5000억원에서 2028년에는 약 5조1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식품업체들은 채식주의자가 많고, 카레나 토마토맛, 매운맛을 좋아하며, 국물을 자작하게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인도인을 위한 라면을 내놓고 있다. 농심은 작년 8월 닭과 카레의 맛을 더한 ‘신라면 치킨’을 선보였다. 삼양식품은 볶음면을 좋아하는 인도인을 위해 ‘불닭볶음면’ 시리즈를 주력으로 밀고 있다. 오뚜기는 소고기 등 육류 성분을 완전히 빼고 식물성 재료로 만든 ‘진라면 베지’를 수출 중이다. 농심 관계자는 “인도에서 소득세를 내고 있는 그룹만 소비자로 본다고 해도 한국의 인구수를 훨씬 뛰어넘는 8000만명에 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