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기간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올린 글로벌 해운사가 향후 불황에 대비하는 ‘End-to-End(엔드 투 앤드)’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항구에서 항구까지 주로 컨테이너선을 이용해 화물을 옮기는 전통 방식의 ‘Port-to-Port(포트 투 포트)’를 넘어 창고 보관, 항공·철도 화물, 항만 터미널, 육상 트럭 운송 등을 통해 창고부터 소비자 집 앞까지 모든 물류 이동 과정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이다. 호황만큼 불황의 골이 깊은 해운업의 특성을 고려,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늘리는 기존 ‘규모의 경제’ 경쟁, 운임 인하 경쟁을 넘어 불황기에는 종합 물류 기업으로 변신해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배경에는 팬데믹 기간 전례 없는 물류 대란이 있다. 코로나 유행으로 항만 노동자가 부족해진 데다 미국 주요 항만에선 파업까지 겹쳐 항구까지 화물을 옮겨도 최종 도착지까지 전달되지 않는 병목 현상이 심화했다. 이후 화주(貨主)들이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모든 이동 과정을 제공할 수 있는 물류 기업을 더 찾게 됐고, 해운사들은 공격적으로 트럭·철도 등 육상 물류, 항공 물류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섰다. 팬데믹 기간 연간 수조~수십조원씩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이를 떠받치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곳간 쌓은 HMM도 23조원대 투자 발표

국내 최대 해운사 HMM도 10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2030년까지 총 23조5000억원을 투자하는 중장기 전략을 새로 발표했다. 탄소 중립에 대응해 친환경 인프라에 14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글로벌 해운사들의 ‘통합 물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컨테이너선, 벌크선 모두 대거 늘린다. 주요 항만 터미널과 내륙 물류 거점에도 4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현재 컨테이너 물동량 기준 점유율 2.8%로 현재 세계 8위인 HMM은 글로벌 선사와 경쟁할 수 있는 규모로 몸집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국내 해운 인프라 자체가 쪼그라들면서 한때 세계 5위(점유율 5%)를 노렸던 HMM도 규모에서 밀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주력 사업인 컨테이너 사업에는 12조7000억원을 투자해 현재 84척을 2030년까지 130척으로 늘린다. 최근 물류 대란으로 품귀 현상이 벌어진 컨테이너 박스에도 1조7000억원을 투자하고, 광물·곡물 등을 통째 옮기는 벌크선 사업에도 5조6000억원을 투자한다. HMM 관계자는 “엔드 투 엔드 사업에서도 신규 항만 터미널, 컨테이너 야적 장소 사업 등을 확장해 종합 물류 사업 진출 기반을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 아래 있는 HMM은 지난 2월 하림그룹 컨소시엄에 매각되는 방안이 무산됐지만, 반년 만에 공격적 투자를 제시했다. 향후 매각 절차가 다시 진행될 수 있지만, 내년 2월 글로벌 해운동맹이 재편되고 경쟁사들이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소극적 경영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HMM도 팬데믹 기간 쌓은 약 15조원 현금 자산을 투자 실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래픽=김현국

◇글로벌 선사들은 항공·육상 물류 싹쓸이

경쟁적으로 컨테이너선을 신규 발주하며 점유율 경쟁을 벌였던 세계 1~3위 스위스 MSC(점유율 19.9%), 덴마크 머스크(14.3%), 프랑스 CMA-CGM(12.5%)은 이미 종합 물류 기업으로서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엔드 투 앤드’ 전략은 UPS, DHL, 페덱스 등 다른 물류 업체들도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있지만,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데다 선박 인도까지 시간이 걸리는 해운의 특수성 때문에 해운사들이 더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MSC는 지난 2일 육상 자회사가 영국 육상 물류 기업 마리타임그룹을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마리타임그룹은 영국 전국 41곳 거점을 바탕으로, 트럭 1600대를 운영하며 약 3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MSC가 2022년 신설한 항공 물류 자회사 MSC에어카고도 이탈리아 항공 화물 기업을 인수하는 등 덩치를 키우고 있다.

머스크도 2021년 약 3조5000억원을 투자한 아시아 육상 물류 기업 LF로지스틱스 인수에 이어 작년 독일 항공 화물 기업도 추가로 인수했다. CMA-CGM도 지난 7월 항공 자회사를 통해 아시아~북미 화물 운송을 시작했고, 스페인 철도 운송사, 프랑스 육상 운송 기업 등을 인수하며 물류 연결을 강화했다.

업계에선 해운사들의 종합 물류 경쟁이 당분간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상위 3사는 팬데믹 기간 한 해 각각 20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현금을 쌓으며 투자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HMM도 2021년 7조원대 영업이익으로 9년 치 적자를 한번에 만회할 정도였다. 해운 컨설팅 기관 ‘드루리’는 2021~2023년 해운 업계가 벌어들인 이익은 그 이전 60년간 벌어들인 수준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